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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마약중독, 단속·처벌 단계 넘어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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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청소년 40여 명이 마약성 진통제(합성 오피오이드)인 펜타닐 패치를 불법적으로 구매해 학교 등지에서 흡입한 사건이 지난해 보도됐다. 필자에게 충격적인 대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들 중 일부는 그저 평범한 아이들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에서 산 진통제여서 별생각 없이 재미로 흡입해봤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마리화나(대마초)가 합법인 캐나다와 미국(일부 주는 불법)에서 유학 생활하면서 대마를 경험한 한 유학생은 카트리지 형태의 액상 대마를 들고 입국하다 적발됐다. 성분을 살펴보니 대마의 중독성분인 THC(테트라하드로카나비놀) 성분이 약 40%로 통상적 대마초와는 확연히 달랐다. 인위적으로 중독성을 극대화한 합성 마약이라 할 수 있다. 30대 주부는 이웃과 나이트클럽에 놀러 가서 경험한 필로폰에 중독돼 병원을 찾기도 했다.

청소년·주부까지 마약에 노출
미국은 ‘공중보건 위기’로 인식
예방·치료 인프라 구축 나서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최근 들어 마약은 청소년과 어른, 병원과 지역사회, 보통 사람과 범죄자를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반에 깊고 넓게 퍼지고 있다. 마약사범은 10년 동안 두 배가 늘어 이제 2만 명에 육박한다. 형사사법 제도 틀 안에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난달 말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은 마약류 사용에 대한 규범을 세우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마약 유통과 마약 관련 범죄를 강력하게 찾아내 처벌하는 것은 마약 문제 해결의 첫 단추일 뿐이라는 것이다.

2016년 3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약물 오남용 및 헤로인 대책 국가회의’에 직접 참석해 마약 문제를 ‘공중보건 위기’로 정의했다. 그는 “미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디서든 마약 중독 문제에 대한 치료적 도움을 바로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최선의 치료 시스템 구축을 위해 국가 예산 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의 모든 정책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상반되는 정책을 펼쳤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마약 중독 위기에 대한 대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지역사회와 약자를 위해 마약 중독 치료와 예방에 국가 예산 1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약물 중독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 약물 중독 예방을 위한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인 예방 교육 확대, 약물 중독 모니터링 시스템 확충 등을 제시했다.

이처럼 미국이 마약 문제를 공중 보건 위기로 바라본 데는 이유가 있다. 마약단속국(DEA)이라는 연방 수사 조직을 별도로 설치해 강력하게 대처해왔지만, 마약 문제가 단속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통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진행한 마약류 중독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52%로 2009년보다 2배 증가했다. 여성·고학력자·고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크게 높아졌다. 인터넷을 통해 처음 마약을 산 경우가 2009년 조사보다 10배 늘었다.

마약 문제가 일부의 일탈에서 이제는 일상의 위험으로 보편화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약 사범의 재범률이 35%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으니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마약 근절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평범한 국민 누구든 마약 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정부 정책이 시작할 때 성공할 수 있다. 뇌에 작용해 기분을 바꿔주는 약물의 위험성을 뇌과학적 관점에서 가르쳐야 하고,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과 조기 개입이 의료체계에 도입돼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마약을 사용한 사람에게는 수강명령 같은 예방 교육이 아닌 치료를 의무화해야 한다. 재발하는 마약 사용자에 대해 집중적인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치료기관을 확대 설치해야 하고, 회복하는 중독자를 위한 재활 서비스도 촘촘히 제공해야 한다.

지금은 실질적인 예방과 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인프라와 재정 투자를 선언하는 일이 급선무다. 아울러 단순한 중독자 관리가 아니라 치료와 회복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를 마련해 민간 전문가들과 협업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에 의료계는 든든한 후방 지원군으로 힘을 합칠 준비가 돼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