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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개마고원에 최고급 관광단지” 사라진 남북 공동개발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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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7〉 서해안·개마고원 공동개발 구상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지난 2일 북한이 강원도 속초 앞바다로 미사일을 쐈다. 미사일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건 휴전 이후 처음이었다. 예전에 남북 긴장이 높아지면 나는 금융시장부터 챙겼다. 경제 관료로서 일종의 조건 반사였다. 주가가 급락하며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경험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시장 반응이 차분해졌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남북관계는 역대 정부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나는 북한 당국의 비판 대상에 오른 적이 있다. 2005년 12월 노무현 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장관을 맡았던 때다. 기자 간담회에서 통일비용을 언급한 걸 북한이 걸고넘어졌다.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나섰다. 당시 조평통 대변인은 “흡수통일을 기정사실로 하는 남조선 당국의 흑심을 그대로 드러낸 불순한 언동”이라고 공격했다.

남북 정상회담용 경제협력 기획
해외투자 유치, 수익 공유 모델
10·4 선언에 서해 평화지대 반영
NLL 둘러싼 정쟁에 흐지부지 돼

사실 나는 흡수통일을 주장한 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우리나라 재정 능력은 막대한 통일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흡수통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북한은 통일비용 논의 자체에 극도로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한강 물길 통하면 서해는 요트 천국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 주변이 아침 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에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연합뉴스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 주변이 아침 노을로 붉게 물들어 있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에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연합뉴스

2007년 여름, 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그해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름부터 준비했다. 추진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정상회담 준비는 외교·안보 라인이 중심이었다. 정책실은 경제협력 관련 아이디어 두 건, 서해안과 개마고원 공동개발에 집중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에서 자세한 얘기를 꺼냈다. 권양숙 여사도 함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생각은 이랬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레저·스포츠 수요가 늘어난다. 그중에서도 요트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그런데 결정적 한계가 있다. 임진강과 만나는 군사분계선 근처 한강 하구는 민간 선박의 통행이 꽉 막혀 있다. 분단 전처럼 길이 열려 한강에서 요트를 타고 강화도 앞바다로 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마이카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요트 붐이 일어날 수 있다.

‘남북이 서해안과 한강 하구에서 안전한 물길을 보장한다. 관광이나 레저 관련 수익은 공유한다.’ 이게 서해안 공동개발의 기본 개념이었다. 국내 수요만 내다본 게 아니다. 바다 건너편 중국 산둥반도에는 항구 도시 칭다오가 있다. 칭다오는 세계적인 요트 도시이기도 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이곳에서 요트 경기를 했다. 물론 서해안 공동개발을 구상한 시점은 올림픽 이전이다. 당시에도 칭다오의 요트 마리나는 대단한 수준이었다.

칭다오에서 요트를 타면 강화도·백령도는 물론 서울이나 개성까지 올 수 있다. 우리도 한강에서 요트를 타고 서해안을 거쳐 칭다오 등으로 갈 수 있다. 탁 트인 바다에서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비행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서해안은 요트 천지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요트를 타는 사람들은 대체로 소득 수준이 높다. 중국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서해안으로 몰려오면 엄청난 관광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강화도 주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여름엔 골프장, 겨울엔 스키장 활용

2007년 10월 5일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기자들에게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수역이용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5일 강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기자들에게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수역이용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마고원 공동개발도 레저 수요에 초점을 뒀다. 여름에는 골프장,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때는 금강산 관광이 활기를 띠던 시절이다. 북한이 개방만 결정하면 개마고원 관광도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필요하면 해외 투자도 유치해 최고급 관광단지를 조성할 수 있다고 봤다.

개마고원 공동개발을 제안하려면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보고서를 받았다. 개마고원이 어떤 곳인지, 충분히 개발할 만한 지역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공식 요청은 아니고 개인적인 부탁이었다.

청와대에 있을 때 다른 사안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한 적이 있다. 대통령 이미지 관리, 즉 PI(President Identity)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당시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아서 고민이었다. 개인용 참고자료로 보고서를 받아봤다. 다른 데는 부탁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기획예산처 장·차관으로 있을 때도 몇 번인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물어보면 보고서를 만들어 주고는 했다. 윤순봉 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이 창구 역할을 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은밀히 자료를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기획예산처 차관이었다. 이 실장이 보낸 자료에는 1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의 평가서가 있었다. 이런 평가가 맞는지, 고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 달라고 했다. 경제 분야뿐 아니라 정부 부처 전체가 대상이었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당시에는 삼성 쪽에서 작성한 게 아닌가 추측했다.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고위 공무원들의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삼성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주로 예산 업무를 했기 때문에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많이 알았다. 이 실장은 가장 믿을 만하면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데 내가 적임이라고 본 것 같다. 나는 어디서 이런 자료가 났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많이 준비했지만 나는 노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에 가지는 못했다.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사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니 개마고원 공동개발 아이디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리 쪽에서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지, 얘기하긴 했는데 북한에서 반대했던 건지 모르겠다.

서해안 공동개발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란 이름으로 10·4 남북 공동선언에 들어갔다. 외교·안보 라인에서 정상회담을 주관하다 보니 경제적 측면보다 평화협력을 강조했던 것 같다. 서해안에서 남북이 관광수익을 공유하더라도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건 우리 쪽이다. 북한도 그걸 모르지 않을 거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NLL을 양보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소모적인 정치 공방이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 서해안 공동개발은 뒷전으로 밀려 흐지부지돼 버렸다.

“평양은 경쟁이 멸종한 도시”

그 후 평양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2018년 10월 4~6일이다. 노무현재단에서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를 평양에서 했다. 당시 재단 이사장이 이해찬 전 총리였다. 그해 9월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때 평양에서 기념행사를 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방문단은 경기도 성남의 서울공항에서 군 수송기를 타고 갔다. 재단에서 방문자 명단을 정리하는데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 워낙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나는 빠지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재단에선 상임운영위원인 내가 안 가면 안 된다고 했다.

평양에 가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예전에 평양을 봤던 사람들은 “많이 발전했다”고 감탄했다. 내가 거리를 관찰하고 내린 결론은 전혀 달랐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이 전 총리와 함께 그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동물원인지 농장인지 시찰하던 중에 나무 그늘에 앉아 1시간 정도 대화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는 북한이 절대로 경제발전 못 합니다. 시장경제의 기본이 자율·경쟁·개방입니다. 당장 북한에서 자율·경쟁·개방을 100% 받아들일 순 없겠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해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안 보입니다.”

그러면서 버스로 돌아다니며 평양 거리를 둘러본 감상을 전했다. “시내 어디를 다녀도 상업 광고판 하나를 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력갱생뿐입니다. 경쟁이 완전히 멸종했다는 뜻입니다.” 이 전 총리도 내 말을 귀담아듣는 듯했다.

방문단 면면을 보고도 느낀 점이 있다. 노무현재단에서 선정한 인원은 150명 정도였다. 그중에 경제 관료 출신이나 경제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나밖에 안 보였다. 이러다가 노무현노믹스는 완전히 잊힐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 경제가 살아나려면 개혁·개방이 필수적이다. 공산주의 국가지만 개혁·개방을 추진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중국과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북한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봉건왕조에서나 있을 법한 ‘3대 세습’이다. 북한이 3대 세습을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으로 갈 수 있을까. 나로선 아무리 고민해 봐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