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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영의 문화난장

‘어린이 해방선언’ 100년…지금 아이들은 얼마나 해방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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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뭔가를 기념하기에 ‘100’만큼 딱 떨어지는 숫자도 없다. 100일도 아닌 100년. 한 세기가 지나도록 가치가 유효해 100주년을 맞았다면, 역사적 의미가 입증됐다고 볼 수 있다. 종교단체나 학교에 ‘백주년 기념관’으로 이름 붙인 건물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이었다. 소파 방정환이 주축이 돼 천도교소년회가 어린이날을 제정, 선포한 것이 1922년이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에서 어린이라는 미래에 주목한 것이다.

숫자 ‘100’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올해 어린이날 100주년의 열기는 기대에 못 미쳤다. 매년 유통업체ㆍ놀이동산 중심으로 진행됐던 이벤트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각 가정에서 ‘상전’이 돼버린 어린이를 두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라” 식의 메시지를 펼친다는 게 식상해 보였다. 어린이 관련 단체들이 크고 작은 행사와 학술대회 등을 열긴 했지만 범사회적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1923년 방정환 선생, 3개항 선포
"윤리·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야"
서구의 ‘보호' 개념보다 근본적
수능·공부 부담은 달라지지 않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구교환)이 아이들을 학원에서 ‘해방’시키는 장면. [사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구교환)이 아이들을 학원에서 ‘해방’시키는 장면. [사진 ENA]

국회에서 ‘방정환 세계화’ 포럼 열려

이렇게 어린이날의 동시대적 가치가 흐려지는 건가 싶었는데,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정환 세계화를 위한 정책 포럼’이 열렸다. ‘어린이날 101주년,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을 부제로 붙여 시민단체 어린이문화연대 등이 주관한 행사였다.

포럼의 초점은 내년에 100주년을 맞는 ‘어린이 해방선언’이었다. 방정환이 결성한 소년운동협회가 1923년 5월 1일 ‘소년운동의 선언’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선언으로, 다음과 같은 3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당시의 어린이 운동은 이렇게 ‘해방’에 방점이 찍혀 있었고, 자연스레 민족 해방운동과 궤를 같이했다. 방정환과 함께 소년 운동을 이끌었던 소춘 김기전이 1923년 『개벽』에 쓴 글에는 “우리는 지금 민족으로 정치적 해방을 부르짖고 인간적으로 계급적 해방을 부르짖는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우리의 발밑에 있는 남녀 어린이를 해방치 아니하면 기타의 모든 해방운동을 철저하지 못하리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정서를 감지한 일제는 1922년 첫 어린이날 행사부터 인쇄물 배포 허가를 늦추는 식의 방해 공작을 펼쳤다. 급기야 1937년 소년운동협회를 강제해산하면서 1945년까지 관련 행사가 아예 중지되고 말았다.

1923년 ‘어린이 해방선언’은 ‘보호’가 주된 내용인 1924년 국제연맹의 ‘어린이 권리선언’과 사뭇 다르다. 보호 역시 구속이 될 수 있다고 봤다는 점에서, 어린이를 한층 더 완전한 인격체로 예우한 셈이다.

해방선언이 공표된 뒤 장유유서(長幼有序)로 대변되는 윤리적 압박과 노동현장으로 내몰린 경제적 압박의 자리는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빠르게 대체됐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1934년 잡지 『신여성』에 ‘동심잡기’란 글을 내고 당시 유치원 교육에 대해 “부자연한 춤과 노래와 123, ㄱㄴ으로 속박해서는 아니 된다”고 비판하며 “해방하라. 그들을 교실에서 공원으로”라고 제언했을 정도다.

해방 이후 과열된 교육열은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 내몰았고,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사회문제로 굳어지고 만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인 1954년 12월 경향신문은 1면에 “시험지옥에서 아동을 구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당시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학생의 처지에 대해 “새벽 5, 6시경 기상해 조반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등교했다가 저녁에는 7, 8시경에라야 집으로 돌아오고 어떤 아이들은 저녁 후에 다시 선생 사택으로 밤 공부를 하게 된다”고 묘사하면서 “과도한 공부를 강요당하는 소년소녀들의 건강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후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고 고교 평준화가 시행됐지만, 명문대 입학이란 압박에서 해방되지 못한 아이들의 처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하다.

1922년 5월 천도교회월보에 게재된 어린이날 홍보 인쇄물 중 일부 . “항상 십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방정환연구소]

1922년 5월 천도교회월보에 게재된 어린이날 홍보 인쇄물 중 일부 . “항상 십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방정환연구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어린이

‘어린이 해방’이란 키워드는 올여름 히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다뤄졌다.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을 자처한 방구뽕(구교환)은 빡빡한 학원 스케줄에 시달리는 초등학생들을 근처 야산으로 데리고 가 신나게 논다.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법정에 선 방구뽕은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대한민국 어린이의 적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부모다. 그들은 행복한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불안해하는 어린이, 고통받는 어린이, 복종하는 어린이를 원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오늘은 대입 수능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다. 종일 마스크를 쓴 채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릴 아이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미완인 100년 전 해방선언이 무겁게 다가온다. 눈앞의 경쟁에 매몰돼 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를 누리지 못하게 한 책임은 온전히 기성세대에 있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 이사장은 ‘어린이 해방’을 두고 “어린이 세상의 ‘오래된 미래’”라고 했다. 아직 그 세상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0년 전 어린이날을 제정하며 “항상 10년 후를 생각하라”고 했던 선각자들의 충고가 여전히 매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