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정부 예산 깎고 ‘이재명표’ 5조 늘린다는 거야의 횡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민주당, 윤 대통령 공약 및 국정과제 예산 삭감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석에 2023년도 예산안 자료가 놓여 있다. 뉴스1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석에 2023년도 예산안 자료가 놓여 있다. 뉴스1

여도 협상전략 없어…초유의 준예산 편성 위기감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줄줄이 삭감하고 있다. 대선 공약이나 국정 과제로 추진해 온 ‘윤석열표 예산’이 타깃이다. 대통령실 이전 관련이 대표적인데, 이미 청와대 개방·활용 예산 59억여원과 외교부의 외교네트워크 구축 예산 21억여원이 날아갔다. 민주당은 영빈관 신축 예산과 대통령실 시설관리 및 개선 예산, 용산공원 개방을 위한 예산 등도 손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깎겠다는 정부 주요 예산만 1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정부 조직 운영비까지 포함됐다. 신설된 행정안전부 경찰국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관련 예산을 소위에서 들어냈다. 공직자 인사 검증을 맡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과 검찰청 4대 범죄 수사 예산도 감액 대상으로 꼽았다. 이미 이전한 대통령실이나 벌써 꾸려진 정부 조직의 운영 예산까지 문제 삼아서 어쩌자는 건가. 정부의 손발을 묶어 아예 일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야의 횡포 아닌가.

그러면서 민주당은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에 대해선 대거 증액을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위 예산소위 야당 의원들은 정부안에서 빠졌던 지역화폐 발행 지원 예산 7050억원을 부활시켰다. 이재명 대표는 어제 금융취약계층, 주거취약계층,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을 위한 ‘3대 민생회복 프로젝트’를 위해 1조2000억원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추진 과제를 위한 증액만 5조원이 넘는다는 집계가 나올 정도다. 도대체 누가 집권당인지 모를 정도다.

예산안 증액은 헌법상 정부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으로서도 어차피 여당과 협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위 구성은 여당이 수적 열세고 위원장도 야당 소속이라 파열음이 예상된다. 여당도 제 할 일을 다하는지 의문이다. 야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하지만 협상 전략도 없이 민주당의 ‘국정 발목잡기’ 프레임만 부각했다. 국민의힘은 세제개편안 등을 다루는 기재위 소위 3곳을 여태 구성조차 하지 못하다 어제야 간신히 야당과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소위 구성이 지연되면서 법인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등 정부 세제개편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여야가 무책임한 대결만 벌이면서 초유의 준예산 편성 우려마저 나온다. 내년도 예산안이 다음 달 말까지 처리되지 못하면 최소한의 예산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발의한 법률안 중 단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횡포는 분명 과하다. 그러나 여당도 국정의 최종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민생을 돌봐야 하는 책임은 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있다. 절제와 협상의 태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