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토국 폴란드에 떨어진 미사일 1발, 세계가 가슴 철렁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폴란드 마을 농지에 지난 15일 미사일이 떨어져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폴란드 마을 농지에 지난 15일 미사일이 떨어져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이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역에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미사일 공격을 하는 와중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의 영토에 러시아제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떨어져 주민 2명이 사망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러시아의 의도적 공격으로 판단될 경우 집단방위 원칙을 고수하는 군사동맹인 나토를 주도해 온 미국과 러시아의 무력 충돌로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토는 16일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나토 본부에서 30개 회원국 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북대서양이사회(NAC)를 열고 폴란드에 떨어져 폭발한 미사일이 러시아 순항미사일을 막기 위해 발사된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날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도 “우리를 겨냥한 공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회견에서 “러시아가 나토를 상대로 공격적인 군사 행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조짐은 없다”면서도 “이번 사고의 책임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러시아에 있다”고 말했다. 사고가 전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AP·DPA통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6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7개국(G7) 및 나토 회원국 정상들과 긴급 회동하고 폴란드 미사일 사태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동 뒤 기자들에게 “탄도 궤적을 보면 러시아에서 발사됐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당국자 3명도 AP에 “예비조사 결과 미사일이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에 대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들에 우크라이나군의 방공 미사일(낙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애초 폴란드 외무부는 ‘러시아제 미사일’이 영토에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미사일이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모두가 운용하는 S-300 방공 미사일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련 시절인 1978년 실전 배치된 장거리 지대공 및 탄도탄 요격미사일로 ‘러시아판 패트리엇’으로 불린다.

롭 리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선임연구원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폴란드가 해당 미사일이 러시아제라고 밝혔다 해도 이 미사일이 러시아에서 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물론 우크라이나도 S-300 방공무기 체계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만큼, 정밀 조사가 진행되기 전에 해당 미사일을 누가 쏘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저스틴 브롱크 연구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미사일을 요격하려고 발사했다가 우연히 경로를 이탈해 폴란드 영토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대공미사일에는 목표물을 놓쳤을 경우 자폭하는 기능이 있지만, 이 기능이 오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초 이번 사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 회원국 영토에서 발생한 첫 미사일 폭발 사례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컸다. 러시아의 의도적 공격일 경우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은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나토 헌장 제5조 ‘집단방위 조항’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나토가 49년 결성된 이래 2001년 9·11 테러 직후 딱 한 번 발동됐다. 당시 나토군은 이 조항을 근거로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장이 나토로 확대할 우려는 줄어들었지만, 이번 사태로 러시아와 나토가 조금만 오판한다면 일촉즉발의 충돌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영국 가디언은 “소련과 미국이 냉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건 양국 간 우발적 공격이나 오판으로 전쟁이 벌어질 위험성을 잘 알고 대처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당시보다 확전 위험이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조사 이후에 다시 우리의 성명을 내게 될 것”이라고 고쳐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인근에 어떠한 공격도 한 적이 없다”며 “상황을 악화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도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모였던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이틀간의 정상회의를 마무리하며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는 내용의 공동 선언을 채택했다. 이들은 선언에서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러시아를) 규탄한다”고 했지만 “현 상황과 제재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는 문구도 담겼다고 CNN은 전했다. G20 회원국 내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