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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금리 인하의 역설…“수술비 급한데 어디도 돈 안빌려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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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에서 도산공원 쪽으로 이어지는 거리. 캐피털·대부업체 20여 곳이 모여 있는 이곳은 서울에서 제2·3금융권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지난 15일 한 대부업체를 찾았다. 대부업체 사무실에 머무른 두 시간 동안 10분 간격으로 대출 문의 전화가 꾸준히 걸려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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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직에 종사한다는 60대 남성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간경변증에 걸린 30세 아들의 수술비가 급하다”며 신용대출을 원했지만 결국 돈을 빌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상담을 맡은 대부업체 직원은 “신용대출을 취급하지 않은 지 1년 정도 됐고, 부동산이나 자동차 등을 저당 잡는 담보대출도 최근 6개월간 한 달에 1~2건 정도만 취급하고 있다”고 안내했다. 상담 내내 깊은 한숨을 내쉬던 60대 남성은 “거의 평생을 일용직으로 일해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대부업체에서 자금을 융통해 썼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올해 들어 대출해 주는 곳이 없다”며 “갈수록 병세가 악화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장기매매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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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행된 ‘법정 최고금리 인하’ 조치가 되레 이들의 대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최고 금리가 낮아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진 대부업체가 대출의 문고리를 걸어잠그면서다.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는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대출 난민’인 금융 취약계층의 마지노선이다. 일반적으로 시중은행인 제1금융권→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대부업체 같은 제3금융권을 거쳐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하면 결국 불법 사채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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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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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대부업자(금융위원회 등록업체 기준)는 2017년 1249개에서 지난해 940개로 줄었다. 대부업 이용자도 줄고 있다. 지난해 112만 명을 기록했다. 2017년(236만7000명)과 비교하면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대부업체 대출 잔액도 줄고 있다. 2018년 14조8664억원에서 지난해 10조9866억원으로 3년 만에 26% 감소했다.

반면에 불법 사금융 피해는 늘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채 피해자의 의뢰 건수는 2933건으로, 이들은 평균 연 229%의 이자를 부담했다. 2년 전인 2019년엔 1048건(연 145%)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최고 금리를 지난해 7월까지 두 차례 인하해 20%로 내렸다. 대부업체는 대개 은행 등에서 돈을 빌려와 다시 돈을 빌려준다. 현재 중견 대부업체는 저축은행 등에서 연 10~12% 금리로 돈을 빌려온다. 조달금리가 10%가 넘는 데다 돈을 빌려주고 회수하지 못하는 대손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관리비용 같은 지출을 더하면 현재 최고 금리인 20%로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고 금리가 24%에서 20%로 낮아진 지난해 7월 이후 대부업체 대부분이 담보대출을 주로 취급했다. 하지만 두 달여 전부터 이마저도 중단하며 ‘개점휴업’에 들어간 업체가 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담보로 맡은 주택 등을 처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대부업 시장이 정상 작동하려면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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