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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뭄에 美 국채시장에도 균열…세계 경제 지진으로 이어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국채 시장에 균열(Cracks)이 생기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수퍼 긴축'에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 시장의 유동성이 마르고,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의 공포감은 코로나19 초기 수준까지 나빠졌다. 미국 국채 시장의 흔들림이 세계 경제의 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코로나 때 수준으로 메마른 美국채 유동성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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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시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인 미국 국채 시장이 삐걱거리고 있다”며 “시장이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인 (미국 채권시장의) 유동성은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3월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시장 거래자의 국채 소화 능력을 나타내는 '시장 심도(Market depth)'는 지난달 들어 2억 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유동성이 풍부하던 2013년 이 지표는 16억 달러 수준이었다. 그만큼 시장에서 채권 거래가 원활하지 않다는 의미다.

국채 시장에 돈 가뭄이 든 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긴축 때문이다. Fed는 지난 9월부터 금리 인상과 더불어 대차대조표(B/S) 축소인 양적 긴축(QT)에 돌입했다.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풀고 채권을 대거 사들였던 Fed가 이제는 그동안 보유했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내다 팔고 있다.

팔 사람은 많은데 살 사람 없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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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사람은 많은데 살 사람은 없는 게 요즘 미국 국채시장의 분위기다.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의 여파로 달러값이 치솟자 각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내다 팔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국채 최대 매수자인 일본이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0엔 수준까지 미끄러지자 일본은행(BOJ)은 엔화를 대규모로 사들이며 시장 개입에 나섰다.

엔화를 사들일 실탄 마련을 위해 외환 곳간(외환보유액)에 쌓아뒀던 미국 국채 일부를 처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일 “일본 정부가 자국 통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단기 미국 채권을 팔고 있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시장금리도 오르는 탓에 기관의 적극적인 매수도 기대하기 어렵다. 금리가 올라가면 채권 가격은 반대로 하락하기 때문이다. 메마르는 유동성에 미 국채 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박민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동성이 마르는 건 거래가 잘 안 된다는 의미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외부 충격에는 취약해진다”고 설명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이미 미국 국채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블룸버그가 산출하는 미국 국채 변동성 지수(MOVE)는 200포인트 수준까지 치솟아 시장이 공포로 얼어붙었던 코로나19 수준에 다다랐다.

Fed 금안보고서에도 경고 담겨

미국 국채 시장의 흔들림은 세계 경제의 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을 비롯, 많은 연금펀드 등 국제 투자자가 미국 국채를 담고 있어서다. FT는 “투자자들은 영국 채권시장이 겪었던 위기가 미국에서 재현될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예측하지 못한 미국 국채 매도가 발생하면 취약해진 미국 채권시장의 기반도 흔들릴까 두려워하고 있다” 고 밝혔다.

영국의 경우 리즈 트러스 전 총리가 대규모 감세안 발표 뒤 국채 금리가 치솟자(채권 가격 급락), 큰 손실을 보게 된 연금 펀드들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을 받으며 국채를 내던지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으면 한국도 충격을 피할 수 없다. 박민영 연구원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한국 국채뿐만 아니라 국채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금리도 다 따라 올라야 한다”며 “또다시 국내 채권 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Fed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Fed는 지난 4일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국채 시장의 유동성이 역사적인 정상 수준을 밑돌고 있다"며 “낮은 유동성은 가격 변동성을 증폭시키고 궁극적으로 시장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실린 투자펀드·연구기관 등 26개 기관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56%가 ‘시장 유동성 고갈과 변동성’을 향후 12~18개월 내 잠재 리스크로 꼽았다.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주요한 위험으로 꼽힌 것이다. 채권 유동성 문제는 이번 보고서에서 새로 불거진 위험 요인이다. 지난 5월 실시한 같은 설문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마이클 바 Fed 부의장도 15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미국 및 세계의 금리 인상과 경제 불확실성으로 국채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만큼 유의해서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채 유동성 이슈가 부각되자, 미국 재무부는 국채를 다시 되사는 바이백(Buyback)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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