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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이렇게나 떨어졌다…자가주거비 포함 땐 물가 1년래 최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가주거비를 포함한 실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집값 하락의 여파로 풀이된다. 자가주거비를 반영하지 않는 공식 물가 통계는 5%대 후반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부동산 가격이 뛰었던 2020~2021년에는 자가주거비 포함 물가 상승률이 공식 통계 수치보다 높았다.

자가주거비 포함 물가 3개월 연속 하락 

이는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 한국부동산원 주택매매가격지수를 토대로 16일 자체 산출한 결과다. 자가주거비 지수는 자기 소유 집에 거주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어느 정도 오르고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유 의원실에 따르면 자가주거비를 반영한 전년 대비 실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0월 4.4%로 내려왔다. 한 달 전보다 0.3%포인트 하락하며 지난해 9월 이후 1년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도심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뉴스1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도심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뉴스1

주거비는 가계 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최근 집값이 내리면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냈다. 지난 7월 5.8%로 정점을 찍은 자가주거비 포함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5.1%, 9월 4.7%, 10월 4.4%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반면 통계청이 발표한 공식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 6.3%에서 8월 5.7%, 9월 5.6%로 떨어지다가 10월 5.7%로 다시 반등했다. 7월 이후 꾸준히 내리막을 타고 있는 자가주거비 포함 지표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통계청 공식 통계는 자가주거비를 반영하지 않고 있어서다. 전ㆍ월세 변화만 지수에 포함하고 있다.

통계청은 매달 자가주거비 지수를 내고 있긴 하지만 공식 통계에 넣지 않고 보조지표로만 활용하고 있다. 그 보조지표마저 실질 자가주거비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계산 방식 때문이다. 현재 통계청은 같은 집을 전ㆍ월세로 산다고 가정해 자가주거 비용을 산출하고 있는데(임대료 상당액법), 계약할 때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계약 기간 집세 등락률은 사실상 0%로 잡힌다. 여러 표본을 두고 있긴 하지만 당장의 집값 변화를 따라잡기엔 한계가 있다.

임대차 3법 시행 영향으로 계약 기간이 최대 4년에 이르는 터라 시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자가주거비 포함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 4.8%에서 10월 4.9%로 오히려 상승했다. 부동산원의 월별 주택매매가격 지표를 바탕으로 한 유 의원 통계와 차이가 분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집값 뺀 물가, 실질 지표와 괴리 

자가주거비를 빼고는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가계 지출에서 주거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자가 보유율은 60.6%(2020년 기준)에 이른다. 집값이 오를 때는 물가가 실제보다 낮게(과소), 지금처럼 집값이 내릴 때는 실제보다 높게(과대) 평가되는 부작용이 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던 2020년과 지난해, 그리고 집값이 꺾인 올해 두 지표(자가주거비 포함ㆍ불포함) 간 이런 차이가 분명히 나타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가장 중요한 잣대다. 한은이 연 0.5%까지 내린 기준금리를 불과 1년여 만에 3%까지 끌어올린 것도 치솟은 물가 때문이다. 자가주거비를 반영하지 않은 현행 물가 통계가 자칫 금리정책 엇박자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유경준 의원은 “물가 상승률의 추가적인 억제를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며, 향후 금리 인상을 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가주거비를 반영한 실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뚜렷한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만큼 금리 인상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국ㆍ독일 등 19개국 자가주거비 반영

한훈 통계청장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자가주거비를 2025년 소비자물가 통계 개편 때 반영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편 작업에 속도는 붙지 않고 있다. 구체적 로드맵도 아직이다. 통계청은 2015년, 2020년 등 5년 주기로 물가 조사 항목과 가중치를 조정하고 있다. 오는 2025년 개편 때 자가주거비를 포함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빨라야 3년 뒤에야 자가주거비를 반영한 소비자물가 통계가 나온다는 의미다.

유 의원은 “물가 통계는 시의성과 정확성이 담보돼야만 선제적인 금리 정책에 활용될 수 있다”며 “현행 소비자 물가지수는 현실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빠른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미국ㆍ독일ㆍ영국ㆍ일본ㆍ호주 등 19개국이 공식 물가 통계에 자가주거비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나라는 한국(보조지표는 작성)과 스위스ㆍ프랑스ㆍ스페인ㆍ터키 등 19개국이다.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자가주거비를 공식 통계에 반영하겠다는 국가가 느는 추세다. 금리 정책이 한층 중요해지면서 제대로 된 물가 통계를 작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물가 통계에 자가주거비를 반영한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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