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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 "처벌 어렵다"에…한동훈이 꼽은 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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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민주당 성향 매체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무단 공개한 데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반인권적 행동”이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경찰은 시민단체의 두 매체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유족 동의 없이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데 비판 여론은 일지만 이름 공개만으론 직접 처벌은 어렵다는 지적도 많아 관련 형사법 조항별로 따져봤다.

민들레·더탐사 “이름 공개가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 

친야 성향 온라인 매체 ‘민들레’와 ‘시민언론 더탐사’는 지난 13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가운데 155명의 실명을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유족 동의를 받지 않고 명단을 무단 공개한 데 대해 각계의 질타가 이어지자 이들은 “신원이 특정되지 않지만 그래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해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희생자 10여 명의 이름은 삭제했다”며 명단 일부를 익명처리했지만, 명단은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친민주당 매체인 시민언론 민들레가 지난 1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태원 참사 사망자 명단. 사진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친민주당 매체인 시민언론 민들레가 지난 1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태원 참사 사망자 명단. 사진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사자명예훼손죄 적용 어려워

법조계에선 우선 시민단체들이 경찰에 고발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적용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제70조는 거짓 또는 부정한 수단·방법으로 타인이 처리하는 개인정보를 취득한 뒤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제3자에 제공한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법 71조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 제공한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정보엔 성명·주민등록번호·영상 등을 통해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여서 언듯보면 이 경우 딱 들어맞을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는 보호 대상인 ‘개인정보’를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정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태원 참사로 숨진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적용할 수 없는 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다만, 희생자 신상이 공개되면 유족들의 개인정보가 특정돼 조롱이나 욕설 등 2차 가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유족들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인정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하는 형법 308조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한다. 명단이 ‘허위의 사실’은 아니기 때문에 형법 308조 역시 적용하기 힘든 경우로 분류했다.

지난 3일 새벽 3시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 참사 닷새째 인적 끊긴 거리에 국화꽃과 메모지, 음료수와 간식 등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이 담아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물품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 놓여 있다. 최영재 기자

지난 3일 새벽 3시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 참사 닷새째 인적 끊긴 거리에 국화꽃과 메모지, 음료수와 간식 등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이 담아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물품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 놓여 있다. 최영재 기자

법조계 “공무상 비밀누설 드러나면 처벌 가능”

이 때문에 희생자 명단을 무단으로 공개한 온라인 매체 ‘민들레’와 ‘시민언론 더탐사’에 대해서는 ‘공무상 비밀누설’(형법 127조)의 공범으로 수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기관이 보관하고 있던 전체 희생자 명단을 누군가 온라인 매체에 무단으로 넘겼을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 역시 “이 자료(희생자 명단)는 철저히 공적인 자료다. 이것을 (명단을 공개한 매체가) 훔쳐 간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제공한 것 아니겠냐”며 “그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들 매체의 희생자 명단 무단공개 사건과 관련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 고발사건을 접수해 수사 중에 있다. 경찰 역시 우선 법리 검토를 통해 각종 혐의를 따져본 후에 공무상 비밀누설에 수사력을 모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 장관의 발언처럼 공무상 비밀누설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며 “이런 사태를 그냥 넘어가면 나쁜 선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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