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당시 코로나19 확산 방지 명분으로 도입된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이 연방법 위법이란 판결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에밋 설리번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49쪽 분량의 의견서에서 “이 정책은 독단적이고 변덕스러우며 행정절차법을 위반했다”며 미 정부를 고소한 이민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른바 42호(타이틀 42)정책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트럼프 정부가 도입한 정책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건법 조항을 근거로 미 육로 국경을 무단으로 넘은 불법 이민자를 망명 신청 기회를 주지 않고 멕시코로 즉시 추방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전염병을 미국에 옮길 가능성이 있을 때 외국인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반(反)이민정책으로 지적돼 왔다. WP에 따르면 이 정책 시행 이후 미 정부는 미국 남부 국경을 중심으로 불법 이민자 240만명 이상을 추방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 따라 국경을 따라 입국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은 추방되지 않고 망명 신청을 할 수 있게 되며, 망명 검토 기간 동안 미국에 머물 수 있다.
설리번 판사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미 CDC가 최소한의 제한적인 방법을 적용하지 않았고, 이러한 조치(타이틀 42)를 취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타이틀 42가 망명 신청자들의 입국을 막고 있을 때 동시에 수백만 명의 다른 여행자들은 버스와 자동차와 같은 덜 제한적인 기준에 따라 국경을 넘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이번 판결은 조 바이든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 4월 바이든 정부는 "5월 23일부로 42호를 폐지한다”고 밝혔지만 5월 루이지애나주 연방법원이 "42호는 유지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지속돼 왔다.
다만, 이 판결이 나왔을 때 백악관의 일부 관리 중에선 이 정책이 불법 입국자 억제에 어느 정도 효과를 줬다며 안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는 42호를 계속 유지했고, 지난달 중간선거를 앞두고는 최근 불법 월경 사례가 급증한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를 즉각 멕시코로 추방하는 새로운 행정 조치를 발동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바이든 정부는 5주간의 유예를 요청했다. 국토안보부는 “법원의 명령 이행이 늦춰질 경우 정부가 국경에서 새로운 정책으로 질서 있게 이행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민자들의 소송을 대리한 리 겔런트 미국시민자유연합 변호사는 “불행하게도 타이틀 42의 유통기한은 길었지만 결국 종료됐다. 이번 판결은 말 그대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