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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2년 간다"더니…보름만에 역풍맞은 민주당 오판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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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제2의 세월호”(정청래 최고위원)를 언급하며 대대적 공세를 폈다. 최측근에 대한 검찰 강제 수사가 시작되는 등 수사망이 조여오던 이재명 대표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다시 촛불을 들고 해야 하나”라고 촛불 집회를 거론했다. 이 즈음 이 대표 측에선 “최소 2년은 갈 이슈”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보름여만인 15일 민주당은 여권으로부터 ‘참사의 정쟁화’ 프레임으로 역공당하는 신세가 됐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①명단 공개=민주당 공세 전열이 흔들린 결정적 계기는 전날 친야(親野) 매체 ‘민들레’가 참사 유족의 동의도 없이 사망자 155명의 명단을 공개해버린 사건이었다. 명단 공개는 “유족 동의 전제”(이 대표)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민주당이 갖은 비판에도 지속적으로 추진하던 일이었다. 또 민들레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최배근(건국대 교수) 전 이재명 대선 캠프 기본사회위원장 등 야권 인사가 다수 참여한 곳이다.

친민주당 매체인 시민언론 민들레가 지난 1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태원 참사 사망자 명단. 사진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친민주당 매체인 시민언론 민들레가 지난 14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이태원 참사 사망자 명단. 사진 민들레 홈페이지 캡처

수세에 몰렸던 국민의힘은 15일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명단 공개에 앞장섰고, 결국 친민주당 매체에서 유족의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했다”며 “공당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유족의 아픔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오직 비뚤어진 정치적 목적 달성에만 혈안이 됐다”며 “민주당에 국민의 엄중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민들레에 수긍도, 비판도 못 하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전날 냈던 “동의 없이 명단이 공개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안호영 수석대변인)는 원론적 입장 외엔 연이틀 말을 아꼈다. 지도부와 거리가 먼 쪽에선 이날 “이 대표가 개인 차원에서 얘기한 거지 당 차원에서 얘기한 게 아니다”(조응천 의원)고 선을 긋는 발언도 나왔다.

②이 와중 실언 논란=김건희 여사를 향한 “빈곤 포르노”(장경태 최고위원)란 표현 역시 “민주당이 정쟁화에만 몰두한다”는 역풍을 불렀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동행한 김 여사가 심장질환을 앓는 아동의 집을 방문한 것을 두고 쓴 표현인데, 국민의힘은 “비이성적 정치공세가 금도를 한참 넘었다”(양금희 수석대변인)며 이슈를 키우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어떤 여성에 대해, 그것도 영부인에 대해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너무나 인격 모욕적”이라며 “윤 대통령의 일이라면 무조건 비난부터 하고 보는 민주당의 비뚤어진 심보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날 성명을 통해 “반여성적 패륜 장경태 의원과 얼굴을 맞대고 국정을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수치스럽다”며 “즉각 과방위원직에서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민주당엔 최고위원직 박탈 등 징계를 요구했고, 국회 윤리특위 제소 방침도 밝혔다.

전날 김 여사를 맹공하던 민주당은 이날 김 여사 공격을 멈췄다. 당사자인 장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빈곤 포르노’라는 표현은 ‘포르노그라피 오브 퍼벌티(pornography of poverty)’라고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도 있는 내용이다. 이상하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용어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③짧은 파장=국정조사ㆍ특검과 범국민 서명운동 등으로 참사 이슈를 장기화하려는 민주당의 계획도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땐 유병언ㆍ구원파 등 여러 이슈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야권에 우호적인 여론이 지속했지만, 이번엔 별다른 파생 이슈가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큰 폭의 변화가 없다.

초반 갈팡질팡하던 국민의힘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참사 국정조사 반대 기류가 뚜렷해지고 있다. 전날 중진ㆍ재선에 이어 이날 초선 의원들도 주 원내대표에게 국조 반대의 뜻을 전달했다. 초선 모임 간사인 전주혜 의원은 “이재명 대표를 향한 수사의 칼끝을 피하려는 방탄용이기 때문에 국조 수용은 어렵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참여한 ‘10·29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촉구 의원 모임’이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 사진 안민석 의원 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이 참여한 ‘10·29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촉구 의원 모임’이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 사진 안민석 의원 페이스북 캡처

안민석 민주당 의원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 등 21명이 모인 ‘10.29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의원모임’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퇴진 집회’에 매주 참여하겠다고 예고했다. 더 강경한 대응을 통해 동력을 모색하겠다는 의도지만, 익명을 원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민주당의 목적이 애도가 아닌 윤석열 퇴진이란 걸 광고하는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보름여 만에 민주당 입장이 난처해지면서 당내엔 “참사 직후부터 너무 들뜬 모습을 보였다. 예견된 역풍”(다선 의원)이란 자조섞인 반응이 나왔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는 “민주당이 피해자 관점에서 생각 안 하고 진영논리만 앞세웠다”며 “이게 오히려 참사 이슈가 불붙는 걸 약화한 측면이 있다. 정쟁화 이미지가 계속되면, 앞으론 이태원 참사가 되레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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