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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한의 인권 침해, 두고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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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에 대해 줄곧 제기된 의구심이 있다. 문 정부는 왜 북한 주민의 인권 참상을 외면하나, 탈북민 한성옥 모자는 왜 2019년 7월 대한민국 땅에서 아사했나, 북한 정권 앞에서는 왜 저자세로 쩔쩔매나. 이런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좌파 정권이 북한 인권에 대해 보여온 태도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에 수백만 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민이 급증했다. 그 무렵 탈북민이 급증하자 그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시설인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짓는 일이 급선무였다. 관련 예산안에 대해 당시 김대중 총재의 국민회의가 강하게 반대했다. “북한 정권이 싫어하기 때문”이란 황당한 이유였다.

2004년과 2006년 미국과 일본이 ‘북한 인권법’을 연이어 제정했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이 북한 인권법안을 발의했지만 11년간 민주당 계열 좌파 정당들이 방해했고 겨우 2016년 3월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법 제정 이후 6년이 지났지만, 핵심 기구인 북한인권재단은 민주당이 이사 추천을 거부해 출범조차 못 하고 있다.

국내외 “문 정부, 북한 인권 외면”
유엔 인권이사회 첫 낙선 초래해
윤 정부, 국격 맞게 인권 옹호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현 인권이사회)는 북한을 인권침해가 심각한 국가로 지목해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2004년부터 비팃 문타폰, 마르주키 다루스만, 토마스 킨타나 보고관이 각각 6년씩 특별보고관을 맡아 탈북민의 증언을 토대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를 토대로 유엔 인권이사회와 총회는 매년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해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페루의 엘리자베스 살몬 교수가 네 번째 특별보고관에 임명됐다.

유엔은 2013년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를 구성했다.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 주도로 1년간의 작업 끝에 ‘북한 인권침해 종합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북한에서 자행되는 광범위하고도 조직적이며 심각한 인권침해는 인도주의에 반한 범죄에 해당하고, 그 책임자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무기로 안보리에서 기소 결정을 막고 있다. 유엔 차원의 북한 인권결의안은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발의돼 매년 투표 없이 합의제로 채택되고 있다. 한국의 우파 정부는 줄곧 동참해왔다. 그러나 좌파 정부는 늘 부정적이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청와대에서 시민사회수석과 비서실장이던 시절에 이 결의안에 기권 또는 투표 불참을 주도했다. 특히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시절에는 북한 당국의 의견을 들어보고 기권해 국내외에 웃음거리가 됐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4년 연속 유럽연합 중심의 공동제안국에 불참해 국제사회의 빈축을 샀다.

2006년 유엔 인권이사회 발족 이래 한국은 이사국으로 5회 연속 선출됐으나, 지난 10월 유엔총회 투표에서 베트남·몰디브에 밀려 낙선했다. 지난 5년간 문 정부가 보여준 반인권적 행태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격이 추락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본래 인권 문제는 좌파의 어젠다였다. 그런데 한국의 좌파들은 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인권을 내세웠으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딴사람처럼 침묵해왔다. 필자는 문 정부 청와대를 장악했던 86세대 종북 주사파 운동권에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 심지어 탈북민을 북한 정권의 배신자로 낙인찍었을 정도로 북한 인권을 철저히 외면했다.

주사파가 권력을 휘두른 문 정부에서 탈북 지식인은 각종 지원과 강연에서 배제됐고, 탈북민이나 관련 단체를 후원하면 세무조사 당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북한 인권 관련 시민운동도 최악의 빙하기였다. 2019년 11월 탈북 청년 어민 2명 비밀 강제 북송 사건이나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고 이대준씨) 서해 피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김여정 하명법’이란 위헌적 대북전단금지법도 문 정부에서 강행했다.

자유와 인권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는 ‘세계 인권의 날’(12월 10일)을 앞두고 북한 인권 정책을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 북한 정권의 심기가 아니라 북한 동포의 인권 옹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글로벌 중추 국가에 걸맞게 국격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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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우 전 통일원차관·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