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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북핵에 中 건설적 역할"…習 "양국이 공급망 안정 보장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 후 첫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 “최근 북한이 전례 없는 빈도로 도발을 지속하며 핵·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면서다.

윤 대통령은 또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중국의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도 요청했는데, 이는 당부이면서 동시에 중국이 비토(veto·거부)권을 사용해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를 멈춰 세운 데 대한 비판성 메시지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외에 윤 대통령의 회담 발언은 주로 한·중 협력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의 반작용으로 불거질 수 있는 '중국 리스크'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윤 대통령은 자유와 국제규범을 언급하며 '가치 외교'라는 일관된 원칙을 강조했다. 특히 “우리 정부의 외교 목표는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추구하고 기여하는 것”이라며 “그 수단과 방식은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美 주도 '공급망 재편' 저격 

시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한·중은) 이사할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 등 양국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다만 시 주석은 한국과 함께 "진정한 다자주의"를 만들고 싶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재편을 우회 비판하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보폭을 맞추는 다자주의는 진정한 다자주의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시 주석은 또 공급망 문제에 대해 “양국이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전과 안정, 원활한 흐름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 협력을 정치화하고 범 안보화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 주도의 반중(反中) 공급망 재편에 한국이 동참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은 메시지로 보인다.

정상회담의 성사를 놓고도 중국은 막판까지 확답을 주지 않았다.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차 출국한 지난 11일까지만 해도 한·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대해 "불투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상회담 전날인 14일 오후까지도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재로썬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10일 백악관이 미·중 정상회담 성사 사실을 발표하고, 일본 역시 오는 17일로 예정된 정상회담 개최 사흘 전에 일정이 확정된 것과 대비된다.

尹정부 외교 성과와 과제는 

한중일 정상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한중일 정상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번 동남아 순방에서 미·중·일과 각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핵심 과제를 끝마쳤다. 특히 양자회담 외에 한·미·일 정상회의를 개최해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해 3국의 확장 억제 의지를 끌어올린 점은 ‘한반도 안보 태세’ 관점에서 분명한 성과로 꼽힌다. 또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지난 5월 정부 출범 이후 한·미 동맹 중심의 외교 전략을 추구하며 생긴 ‘중국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서로 주요 현안에 대한 레드라인을 그으며 경쟁 구도가 선명해진 것은 ‘GPS(Global Pivot State, 글로벌 중추 국가)’를 추구하는 한국 외교의 무거운 과제가 될 전망이다. 주요 현안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한국 역시 기존의 원론적 입장 이상의 분명한 메시지 발신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특히 북핵 문제는 향후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고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레버리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시진핑 주석은 일단 이번 한·중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선 북핵 문제에 대한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앞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 행사를 촉구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에 선을 그었다. 특히 미·중 정상회담 후 중국 측이 발표한 성명엔 북한·북핵· 등 북한 문제에 대해선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 현재로썬 비핵화 협상 복귀 등을 포함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 움직일 뜻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만·인권·공급망 '선택 압박' 직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신화=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신화=연합뉴스

또 양안(两岸·중국과 대만) 문제 역시 향후 미·중 경쟁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시 주석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 이익”이라며 “중·미 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레드라인”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어떠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도 반대한다”고 응수했다. 대만 문제에 대한 양 정상의 강경한 입장은 결국 최악의 경우 중국은 대만을 침공해 무력 통일에 나서고, 이후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력을 투입하며 정면 충돌하는 시나리오로 이어진다.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것에 맞서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 재편과 인권 이슈를 집중 부각했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중국의 비(非)시장적 관행이 미국과 전 세계에 해를 끼친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려를 제기했다. 국제 규범과 질서, 즉 미국이 주도하는 룰에 기반한 공급망 재편의 당위성을 강조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신장 위구르와 홍콩 등 중국이 불편해하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꺼내 든 공급망 재편과 인권 문제의 경우 한국은 이미 미국과 보폭을 맞추고 있는 상태다.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과정에 원년 멤버로 나섰고, ‘칩4’로 불리는 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공급망 대화에도 참여하고 있다. 인권 문제와 관련해선 지난달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신장 위구르 인권 상황을 토의하기 위한 결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간담회와 포럼 등 주요 공개석상에서 “신장 문제가 한국과 무슨 상관이냐”며 한국의 찬성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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