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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활동의 자유vs접경지역 생존권…권영세 의견서로 대북전단금지법 갑론을박 재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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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금지법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 비례성의 원칙을 위반해 헌법에 위반된다.”(지난 10일 제출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의견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행동은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 일상을 위협하고 한반도에서 분쟁과 갈등을 계속 유발해 왔다.”(15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 규탄 기자회견에서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표현의 자유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권 침해라는 기본권이 충돌하며 오랜 갈등을 빚어온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둘러싼 논란이 통일부 장관의 위헌 의견서 제출로 재점화됐다.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의견 제출 규탄 기자회견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대북전단금지법 위헌 의견 제출 규탄 기자회견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것”vs“정치활동의 자유 제약”

15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 단체들은 권 장관을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고 두둔한 것은 통일부 장관의 직무와 어긋나게 남북공동선언을 파기하고 접경지역 일대에서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적대행위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권 장관은 지난 10일 헌법소원이 제기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위헌’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공개한 의견서에서 그는 “전단 등을 북한의 불특정 다수에게 배부하거나 북한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는 북한 당국이나 주민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나 가능성을 내포하는 점에서 정치활동 내지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며 “이 같은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정치활동의 자유 또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4차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뉴스1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4차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뉴스1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엇갈린 시선  

법조계의 의견도 갈린다. 일관되게 대북전단금지법의 위헌성을 지적해온 장영수 고려대 법률전문대학원 교수는 “해당 법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과잉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공익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다고 할 때 제한할 수 있는데,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위협과 논리적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다”며 “처벌 수준이 높지 않다고 하지만, 기본권 제한할 상황이 아닌데도 제한을 하고 있다면 처벌을 약하게 해도 과도한 것이다”고 말했다.

한명섭 변호사는 법의 명확성 문제를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법률 4조에 명시된 ‘전단 등’에는 비방의 목적이 아닌 인도적 지원 물품도 포함돼 있다”며 “전단 살포행위로 북한을 비방하는 행위를 못 하도록 한다는 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북전단금지법 찬성 측은 접경지 주민들의 안보 불안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핵심 논거로 삼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속한 김남주 변호사는 “접경지역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에서 대북전단 살포 제한을 끊임없이 요구해왔고, 실제로 2014년 북한에서 대북전단에 대한 고사포 사격으로 연천지역에 포탄이 떨어진 적도 있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며 “표현의 자유라는 공익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의 명확성과 관련해 그는 “법에서 여지가 있는 영역은 재판부가 합리적 해석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외부 물품에 민감해진 북한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탈주민 등을 지원해온 전수미 변호사는 “북한은 매우 낮은 수준의 의료시스템으로 인해 전단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품 자체를 다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라 극심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변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 등은 대북전단금지법이 지난해 12월 29일 공포되자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행위 등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를 하는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현재 박 대표는 지난 1월 대북전단 살포 미수(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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