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 맞냐”, “명단 공개”…이태원 참사에 극단주의 판 친다

중앙일보

입력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회장을 맡았던 강신업 변호사. 중앙포토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회장을 맡았던 강신업 변호사. 중앙포토

이태원 참사를 둘러싸고 극단적인 주장들이 여기 저기서 분출되고 있다. 참사 피해가 일부 세력의 정치적 의도로 커졌다거나, 현장 일대에서 약물 테러가 있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의혹들이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흘러나온다.

소문의 진원지는 대부분 정치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다. 보수 진영에선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회장이었던 강신업 변호사, 시사평론가 이봉규씨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강 변호사는 지난 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강신업TV’에서 “만원 지하철에서 푸시맨이 억지로 사람들을 집어넣어도 압사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데 이태원 참사는 그런 것도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거리가 55평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갔길래 죽을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참사가 의도적으로 벌어졌을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강 변호사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 2명이 현장에서 숨진 것을 거론했다. 그는 “이태원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각에, 평상시 나타나지 않았던 자들이 나타났다면 우연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보수 성향의 유투버 이봉규씨는 ‘이봉규TV’에 ‘명단’이라는 제목의 콘텐츠를 올렸다가 삭제했다. 삭제된 영상은 ‘변희재의 진실투쟁’ 등을 통해 일부분만 확인이 가능했다. 영상에서 이씨는 함께 출연한 패널과 함께 “압사로 156명의 사망이 불가능하며 상당수가 약물 중독 등에 의해 이미 숨진 시신일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씨는 “나머지 100명은 다른 장소, 술집이라든가 다른 골목에서 테러를 당해서 합쳤을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함께 출연한 패널은 사고 당시 신체를 드러낸 채 누워있는 사상자들의 시신 사진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여자분인데 아예 팬티 차림이다. 실내에 있었다는 증거다”라고 했다.

더탐사 캡처.

더탐사 캡처.

유사한 사례는 진보 진영에서도 벌어졌다. ‘더탐사’는 14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태원 참사 피해자 명단을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의 소식을 전하던 중 떡볶이 밀키트를 판매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탐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변호사들이 청담동 모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지속적으로 여권을 공격해 온 유튜브 채널이다. 더탐사는 이날 떡볶이 밀키트를 소개하며 “우리가 엄청난 소송에 시달리고 있고 더탐사 보도를 인용해 게시한 일반 시민 분이 고발을 당했는데 그 분도 도와드려야 한다”는 금전적 이유를 들었다. 또 “어제 판매한 적양파즙도 품절”이라며 광고 효과를 강조했다.

자칭 ‘어용 지식인’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0일 MBC에 출연해 “유족 동의를 받아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얼굴을 보면 공감이 훨씬 더 깊게 이뤄진다. 그러면 진상 요구도 커지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 요구도 커질 것”이라며 “이것이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망자 명단 발표도 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명단 공개에 대해선 “분명한 2차 가해”(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이정미 정의당 대표)라며 반대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극단적 주장과 음모론이 일부 정치 고관여층에서 언급되며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의 이유를 ‘팬덤 정치’에서 찾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국정 난맥상을 일부 지지층에만 의존해 돌파하는 식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이 문재인 정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이들의 선호에 맞춘 가짜뉴스나 극단적인 주장들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 소장은 “진보 진영에서 이른 바 ‘선동’을 위해 활용해오던 방법들이 이제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