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부터 오락실 펌프까지…스크린에도 번진 세기말 감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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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개봉하는 영화 '동감'은 2000년 개봉한 김하늘·유지태 주연의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배우 여진구가 1999년에 사는 95학번 용을 연기했다. 사진 CJ CGV

16일 개봉하는 영화 '동감'은 2000년 개봉한 김하늘·유지태 주연의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배우 여진구가 1999년에 사는 95학번 용을 연기했다. 사진 CJ CGV

친구가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삐삐(무선호출기) 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여론조사원인 척 전화를 돌리고,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는 친구가 나중에 볼 수 있도록 공중전화 부스 한쪽에 메시지를 남긴다. 묵직한 캠코더로 함께 풍경을 찍다가 설렘이 싹트고, 오락실에서 펌프 게임 실력을 뽐내며 웃음 꽃이 핀다.

모든 게 디지털로 연결된 요즘 시대엔 느끼기 어려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가을 극장가를 수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99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잇따라 공개되며 올해 대중문화계 흥행 코드로 꼽히는 Y2K(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생활 양식과 시대 분위기) 감성이 스크린에도 소환되는 모습이다.

16일 개봉하는 영화 '동감'과 지난달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는 모두 1999년을 배경으로 택해 아련한 감성을 자극한다. 사진 CJ CGV, 넷플릭스

16일 개봉하는 영화 '동감'과 지난달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는 모두 1999년을 배경으로 택해 아련한 감성을 자극한다. 사진 CJ CGV, 넷플릭스

22년만에 리메이크 ‘동감’, 이제 1999년이 과거

16일 개봉하는 영화 ‘동감’은 2000년 개봉해 사랑 받았던 동명 원작 영화를 22년 만에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고장 난 무전기를 매개로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남녀가 소통하게 된다는 원작의 로맨스 판타지적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온 가운데, 시대 배경과 남녀 설정에 변화를 줘 새로운 감성을 더했다. 원작에서는 여대생 소은(김하늘)이 과거인 1979년에, 남학생 인(유지태)이 21년 후인 2000년에 살았지만, 리메이크판에서는 95학번 남학생 용(여진구)이 1999년 과거에 살고 21학번 여학생 무늬(조이현)가 2022년 현재를 사는 설정이다.

리메이크된 ‘동감’은 용이 짝사랑하는 신입생 한솔(김혜윤)과 이어지도록 무늬가 상담해주는 과정에서 1999년과 2022년 사이 23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재치 있게 활용한다. 예컨대 무늬가 해준 조언에 따라 머리를 만지고 데이트에 나간 용이 한솔로부터 ‘선배 머리 스타일은 시대를 앞서가는 느낌이 든다’는 칭찬을 듣는 식이다. 이렇게 용의 짝사랑이 비중 있게 그려지면서 ‘하이루’ ‘방가방가’와 같은 과거 유행어부터 스티커 사진, 공중전화 부스 등 90년대 말의 풍경이 자연스레 펼쳐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락실 펌프 기계 등 90년대 소품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팝업스토어도 20일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운영된다.

1999년대 캠퍼스 로맨스를 한 축으로 하는 영화 '동감'에는 스티커 사진, 오락실 펌프 기계 등 90년대 말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사진 CJ CGV

1999년대 캠퍼스 로맨스를 한 축으로 하는 영화 '동감'에는 스티커 사진, 오락실 펌프 기계 등 90년대 말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사진 CJ CGV

영화 '공감' 속 1999년 시절 동아리방을 재현한 팝업스토어.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카페 포제에서 20일까지 운영된다. 사진 CJ CGV

영화 '공감' 속 1999년 시절 동아리방을 재현한 팝업스토어.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카페 포제에서 20일까지 운영된다. 사진 CJ CGV

친구 짝사랑 관찰하다 첫사랑…“그 시절만의 이야기”

앞서 지난달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 역시 세기말을 배경으로 한 청춘 로맨스 영화다. 낡은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배달받은 어른 보라(한효주)가 1999년을 회상하는 신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당시 17세였던 보라(김유정)가 단짝 친구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자신만의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오랜만에 등장한 순도 높은 K로맨스 영화로 호평받으며 공개 직후 집계된 10월 3주차(17~23일) 넷플릭스 영화(비영어) TOP10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는 1999년 17세였던 보라(김유정)가 단짝 친구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다 자신도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는 1999년 17세였던 보라(김유정)가 단짝 친구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다 자신도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에는 공중전화 부스, 삐삐, 캠코더 등의 세기말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품이 대거 등장한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에는 공중전화 부스, 삐삐, 캠코더 등의 세기말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품이 대거 등장한다. 사진 넷플릭스

실제 1999년에 학창 시절을 보낸 방우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만큼 그 시절 감성과 배경이 디테일하게 구현됐다. 방 감독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썼던 교환 일기장에 친구가 좋아하던 남학생을 제가 관찰했던 이야기가 적혀 있더라”며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 나이니까 할 수 있었던, 무모했지만 순수했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삐삐와 이메일, 공중전화 등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뒤섞인 당시의 통신장비와 캠코더, 비디오테이프 등 세기말 분위기를 구현하기 위해 동원된 각종 소품들이 영화를 빼곡히 채운다.

“세기말 경험한 세대가 창작 주체로”

1990년대 말에 태어나 세기말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의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도 이들 작품의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특히 국민 남동생과 국민 여동생으로 꼽히는 배우 여진구와 김유정이 두 작품에서 각각 주연을 맡아 1999년을 배경으로 로맨스를 연기했다. 이에 대해 여진구는 “90년대 감성을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95학번이 돼볼 수 있다는 게 ‘동감’의 매력이었다”며 “김유정과 99년도의 로맨스를 비슷한 시기에 같이 해서 서로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영화 '20세기 소녀'에서 1999년 첫사랑에 빠지는 여고생 보라를 연기한 김유정(왼쪽)과 '공감'에서 무전기를 통해 미래에 사는 여자와 소통하게 된 1999년의 남자 용을 연기한 여진구. 사진 넷플릭스, CJ CGV

영화 '20세기 소녀'에서 1999년 첫사랑에 빠지는 여고생 보라를 연기한 김유정(왼쪽)과 '공감'에서 무전기를 통해 미래에 사는 여자와 소통하게 된 1999년의 남자 용을 연기한 여진구. 사진 넷플릭스, CJ CGV

최근 들어 대중문화 콘텐트에 Y2K 코드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로는 20여년 전 감성이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되새기는 기회를, 젊은 층에게는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간접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 꼽힌다.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사실 복고는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지만, 20여년 전을 경험한 세대가 콘텐트 창작 주체가 되면서 세기말이라는 특정 시기가 자주 소환되는 것”이라며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Z세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단순한 첫사랑 영화가 아니라, 세대 간 대화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가족 영화로서 소구되는 이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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