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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손 찾은 젤렌스키 "종전의 시작"…미·러 정보수장 은밀 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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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14일(현지시간) 최근 탈환한 남부 도시 헤르손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14일(현지시간) 최근 탈환한 남부 도시 헤르손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탈환한 남부 도시 헤르손을 14일(현지시간) 전격 방문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에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같은 날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기관 수장이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 현황 등에 대해 논의한 소식이 전해졌다.

BBC·가디언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헤르손 시내를 방문해 행정관청 국기 게양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의 깜짝 등장에 주민 수백여 명은 환호로 환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국기가 올라가자 국가를 불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뺏겼던 우리나라 전역으로 한 발 한 발 진군하고 있다"며 "(헤르손 탈환은) 종전의 시작이며 우리는 평화를 찾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장병들을 격려하고, 주민들과 셀카 촬영을 하는 등 10여 분간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우크라이나군의 향후 행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러시아는 점령하고 싶지 않다. 다른 나라 영토에 관심 없다"고 답하는 여유도 보였다.

러시아군의 퇴각 이후 14일(현지시간) 헤르손 광장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렸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의 퇴각 이후 14일(현지시간) 헤르손 광장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렸다. AFP=연합뉴스

헤르손은 지난 3월 러시아군 수중에 넘어갔다가 8개월 만인 지난 11일 우크라이나군이 되찾은 지역이다.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헤르손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처럼 승리의 분위기 속에서도 전쟁의 상흔은 곳곳에 남아있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젤렌스키가 방문한 이날에도 헤르손 시내와 먼 곳에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주요 간선도로와 교량 등 헤르손 진입로의 파손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근 마을을 우회해 구불구불한 흙길을 따라 도시로 진입해야 했다고 한다. 지역 곳곳에 내걸린 러시아 선전 포스터 수십여 개도 아직 철거되지 않은 상태다. 인터넷과 전화선이 끊겨 대통령의 방문 사실조차 모르는 주민들도 상당수였다.

러시아군의 잇따른 퇴각에 전세가 우크라이나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자 일각에선 평화협정이 임박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날 미·러 정보기관 수장이 고위급 회담을 진행하면서 이런 주장에 힘이 실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AP=연합뉴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AP=연합뉴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세르게이 나리시킨 러시아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이날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만난 사실이 알려졌다. 이번 회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알려진 미국과 러시아 간 고위급 대면 접촉이다.

미국 측은 번스 국장이 튀르키예 현지로 출발하기 전 우크라이나 측에 회담 개최 사실을 알리고 관련 사안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번 회담은 미국 측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번스 국장은 이날 회담에서 러시아 측에 핵무기 사용 위험성을 경고했다. 백악관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따라 전략적 안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최근 서방에선 수세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필사적인 승리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만, 미국 측은 이번 회담에서 종전이나 평화협정 등이 의제로 논의되진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 협상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우크라이나 측이 없는 자리에서 러시아와 비밀 평화회담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날 헤르손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한 준비가 돼 있지만, 그것은 우리나라 영토 전체에 대한 평화여야 한다"며 서방 측이 요구하는 일부 영토를 양보하는 평화협정엔 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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