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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5일째 오리무중…그날 유력 조력자는 처벌 못한다,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양경찰 정보외사과 직원들이 15일 어선 및 예인선에 대해 불시검문을 한 뒤 김 전 회장의 사진을 선주에게 보여주고 있다. 심석용 기자

해양경찰 정보외사과 직원들이 15일 어선 및 예인선에 대해 불시검문을 한 뒤 김 전 회장의 사진을 선주에게 보여주고 있다. 심석용 기자

“이런 얼굴보면 꼭 신고해주세요.”

15일 오전 11시쯤 인천항 남항부두. 사복을 입은 해양 경찰관들이 정박 중인 어선에 올라탔다. 어선 내 어창까지 살핀 이들은 선주에게 한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목격하면 꼭 경찰서로 연락해달라”고 말했다. 사진 속 인물은 지난 11일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었다. 이날 경찰관들은 인천항 부두 곳곳을 오가며 점검을 이어갔다. 인천해경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잠적한 이후 정보외사과 경찰관 15명을 비상 근무체제로 전환하고 과거 범죄 전력자, 우범자, 선박 종사자 등을 상대로 첩보를 수집하고 구역을 나눠 잠복하면서 수상한 어선이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양경찰 경비함정 직원들이 14일 오후 용의선박에 대해 검문섬색을 하고 있다. 사진 인천해양경찰서

해양경찰 경비함정 직원들이 14일 오후 용의선박에 대해 검문섬색을 하고 있다. 사진 인천해양경찰서

지난 11일 김봉현 전 회장이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팔찌)를 끊고 도주한 사건의 불똥이 해양경찰로 튀었다. 검찰이 닷새째 행적이 묘연한 김 전 회장이 밀항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서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밀항 가능성의 증거가 될 김 전 회장의 대포폰에 대해 통신영장을 청구했으나 같은 날 ‘필요성·상당성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기각됐다. 김 전 회장이 도주한 당일 검찰의 협조 요청을 받은 해경은 김 전 회장의 밀항을 차단하기 위해 외사과·형사과 직원 최대 300여명을 투입해 해상 경계와 검문·검색을 강화한 상태다.

해경청에 따르면 지난 7년간 밀항 사범 10명이 해경에 붙잡혔다. 서울남부지검이 수배했던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기업가 A씨가 대표적이다. 김찬경 회장은 2012년 5월 금융당국의 일부 저축은행 영업정지 조치를 앞두고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가 해경에 덜미를 잡혔다. 그는 경기도 화성 궁평항에서 어선을 타고 공해상으로 이동한 뒤 중국행 화물선으로 옮겨 타 밀항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12년 5월 3일 궁평항에서 알선책과 접선하던 중 내부자의 제보를 받고 잠복해 있던 해경에 체포됐다.

자본시장법위반 혐의(피해액 약 414억원)로 수배된 A씨는 2019년 4월 12일 경남 거제에서 중국 산동으로 떠나는 화물선의 부선(다른 배에 끌려다니는 동력설비가 없는 선박)에 숨어서 밀항을 시도하다가 목포해경에 붙잡혔다. A씨는 중국의 지인을 통해 알선책에 거금을 주고 밀항을 추진했지만, 조력자의 변심으로 수사 기관에 붙잡혔다.

범인도피죄 적용 어려운 조카 

김 전 회장은 지난 11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직후 지명수배된 상태다. 심석용 기자

김 전 회장은 지난 11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직후 지명수배된 상태다. 심석용 기자

문제는 김 전 회장의 경우 앞선 두 사례처럼 조력자의 변심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잠적하기 전까지 차량에 동행한 조카가 조력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1일 오후 1시쯤 조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남단으로 간 뒤 손목시계형 위치추적 장치를 끊고 달아났다. 조카가 운전한 차량에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가 없었고 휴대전화 유심도 바꾼 터라 구체적인 도주 정황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카에게 범인도피죄를 적용할 수 없는 만큼 김 전 회장의 소재에 대한 신빙성 있는 진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친족 또는 동거가족이 범인을 은닉·도피하게 한 죄를 범할 땐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151조 2항)’는 규정 때문이다.

해경에 따르면 현재까진 유의미한 신고는 없었다고 한다. 인천 해경은 지난 14일 오후 5시쯤 구읍뱃터로 이동하는 어선에 신원미상의 사람이 타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선박을 점검했지만, 특이점은 없었다. 같은 날 오후 3시쯤엔 대무의도 인근에서 위치발신장치(V-PASS)를 끄고 운항하는 선박을 포착하고 출동했지만,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 13일 목포에서 김 전 회장과 비슷한 인상착의의 남성을 봤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오인 신고로 파악됐다.

어선 또는 화물선 이용할 가능성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1일 오후 재판을 앞두고 전자발찌를 끊은 채 도주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부근에서 김 전 회장의 전자장치가 끊어졌고 연락이 두절됐다. 사진은 김봉현 전 회장. 사진 서울 남부지검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11일 오후 재판을 앞두고 전자발찌를 끊은 채 도주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경기 하남시 팔당대교 부근에서 김 전 회장의 전자장치가 끊어졌고 연락이 두절됐다. 사진은 김봉현 전 회장. 사진 서울 남부지검

해경은 김 전 회장이 밀항한다면 어선 또는 화물선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알선책을 통해 섭외한 어선을 타고 중간수역까지 이동한 뒤 중국·일본 선박으로 환승해 밀항하는 방식이다. 동남아행 화물선에 잠입하는 경우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각에선 보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20년 중국인 21명이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항에서 보트를 이용해 태안 등지로 밀입국하기도 했다. 하지만 11월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은 점들을 볼 때 보트 밀항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해경의 판단이다. 해경 관계자는 “기존에 밀입국과 밀항 관련 선박이 해상에 나타나면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며 “검찰, 해수청, 관세청 등과 공조체계를 갖춰 김 전 회장의 밀항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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