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군여울로 돌아온 임진강 두루미…“두루미도 사람 맘 아는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내 임진강 장군 여울. 강 건너 자갈밭에서 평화롭게 쉬던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와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17마리가 큰 울음소리를 내며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탐조대의 망원경으로 두루미를 살피던 이석우(64)씨의 눈에 수석 채취객들이 포착됐다. 장화를 신은 2명이 얕은 강물 바닥을 긴 자루가 달린 곡괭이로 헤집거나 손으로 바닥의 돌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씨는 급히 112에 전화를 걸었고 곧이어 순찰차가 민통선 내로 달려와 경고 방송을 해 이들을 강 바깥쪽으로 몰아낸 뒤 추적했다. 이씨는 ‘임진강 두루미 아빠’로 불린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월동지’에 곡괭이를 들고 나타난 수석 채취객들. 이들이 침입하자 두루미와 재두루미 17마리가 멀리 달아났다. 사진 이석우씨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월동지’에 곡괭이를 들고 나타난 수석 채취객들. 이들이 침입하자 두루미와 재두루미 17마리가 멀리 달아났다. 사진 이석우씨

 임진강 민통선 이북 지역엔 매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두루미와 재두루미 600여 마리가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로부터 날아든다.

이 지역이 ‘두루미 낙원’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2000년 겨울 두루미 3마리 일가족이 날아든 게 시작이었다. 지역 환경단체인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사무국장이었던 이씨가 ‘두루미 아빠’로 변신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20년 넘게 지역 환경 보호 활동가, 한국조류보호협회, 연천군, 경기도, 문화재청, 군부대, 수자원공사(K-water) 등이 월동지 보호에 힘을 모은 결과 겨울 손님의 수는 매년 늘어났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월동지’. 사진 이석우씨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월동지’. 사진 이석우씨

23년째 연천 민통선 내 임진강에서 두루미 보호 활동을 진행 중인 이석우씨. 지난 13일 오후 연천군 민통선 내 두루미 탐조대. 전익진 기자

23년째 연천 민통선 내 임진강에서 두루미 보호 활동을 진행 중인 이석우씨. 지난 13일 오후 연천군 민통선 내 두루미 탐조대. 전익진 기자

 이씨는 “두루미 한 가족이 처음 임진강을 찾았을 때 누군가는 이 귀한 손님의 월동을 기록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씨는 갖은 노력을 다했다. 현장 보호 활동은 일상이 됐고 사진과 영상물을 만들어 기록으로 남겼다. 두루미 사진전도 두 차례 열었다. 12년 전부터는 촬영한 영상을 다큐멘터리식 영상물로 제작해 개인 유튜브(DMZ 두루미)에 올린다. 이씨는 “영하 20도 이하의 한겨울 밤 임진강변 위장 텐트 속에서 두루미 잠자리를 관찰하면서 밤을 새운 적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환경부와 학계를 도와 2004년부터 10년간 두루미 개체 수 조사 모니터링에도 참여했다. 탐조객들을 안내하며 ‘큰 소리 내지 않기’, ‘가까이 가지 않기’ 등 에티켓을 가르치는 것도 이씨에겐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 사비와 시간을 털어 한 일들이다.

“과거 최대 월동지였던 장군 여울 겨울철 수몰 반대”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를 결성해 4년째 대표를 맡아 온 이씨는 요즘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인 장군 여울 되살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임진강 두루미는 한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수심 20∼30㎝ 얕은 급류인 여울을 중심으로 먹이활동을 벌이고 잠도 자는데 장군 여울과 빙애 여울 2곳이 최대 서식지다.

그러나 지난 2010년 하류 3㎞ 지점에 군남댐(군남홍수조절지)이 조성되면서 위기가 닥쳤다. 군남댐 측은 매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총저수량(7100만t)의 일부를 담수하는데 담수 철이면 댐과 가까운 장군 여울이 수몰돼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씨는 이때부터 담수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월동지’ 상공을 날고 있는 두루미 무리. 사진 이석우씨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장군여울 ‘두루미 월동지’ 상공을 날고 있는 두루미 무리. 사진 이석우씨

담수가 되면 600여 마리의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은 상류의 빙애 여울에 빼곡하게 몰려들어 겨울을 나야 했다. 지난 겨울엔 먹이와 잠자리 부족에 내몰린 두루미와 재두루미 100여 마리가 민통선 바깥 임진강으로 나와 활동하는 이상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두루미들이 올겨울 장군 여울로 돌아왔다. 군남댐 측이 댐 수문 보강공사 때문에 부분 담수 시기를 예년보다 2개월여 늦은 내년 1월로 늦춘 결과였다. 현재 선발대로 임진강으로 돌아온 두루미와 재두루미 50여 마리 중 절반 이상이 장군 여울 일대에서 지내고 있다. 이씨는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고 삵 등 천적을 피해 두루미가 안전하게 잠 잘 수 있는 최적지가 율무밭과 가까운 민통선 내 여울 2곳인데, 겨울철 부분 담수로 인해 여울 1곳이 사라지는 것은 임진강 두루미 생태환경을 해치는 요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 등의 지속적 요구에 군남댐을 관리하는 케이워터 측도 반응하고 있다. 케이워터 관계자는 “겨울철 부분 담수는 댐 하류 지역의 갈수기 안정적인 하천유지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두루미 서식지인 여울 2곳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지난 2015∼2016년 겨울철 총 저수량의 20%까지 담수 했던 것을 2017년부터 6∼7%로 줄였다”고 말했다

23년째 연천 민통선 내 임진강에서 두루미 보호 활동을 진행 중인 이석우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DMZ 두루미’를 소개하고있다. 전익진 기자

23년째 연천 민통선 내 임진강에서 두루미 보호 활동을 진행 중인 이석우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DMZ 두루미’를 소개하고있다. 전익진 기자

“두루미도 사람 마음 아는 듯”  

 다시 겨울을 맞는 이씨는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두루미들이 장군 여울로 돌아온 데다 지난 3년간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제한됐던 관광객의 민통선 출입이 재개돼 사람들도 돌아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두루미들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것 같다”며 “지난 5월엔 문화재청이 ‘연천 임진강 두루미류 도래지’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지난 2019년 6월엔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두루미 보호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고 있어 안심”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 3000여 마리만 남은 희귀 조류인 두루미가 연천과 임진강의 상징물로 자리 잡은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이씨는 지난 12일에도 초등생 22명에게 두루미 월동지 생태를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