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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불황·규제·소송 3중고 스타트업…국회 연구모임에 “살려달라”

중앙일보

입력

저희는 ‘제2의 타다’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 법률 플랫폼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 엄보운 이사

보건복지부도, 기획재정부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대한의사협의회에서 비급여진료 가격 공개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 성형·미용 정보 플랫폼 ‘강남언니’ 운영사 힐링페이퍼 홍승일 대표 

발표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여야 국회의원 10여 명과 스타트업계 대표·임원 등 청중 50여 명이 자리한 장내는 사뭇 조용해졌다. 제2의 타다금지법이라 불리는 ‘직방금지법’(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국회 발의된 지 한 달 만에, 국회의원들과 스타트업계가 마주한 자리였다.

15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국회 스타트업 연구단체 '유니콘팜'이 출범했다. 심서현 기자

15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국회 스타트업 연구단체 '유니콘팜'이 출범했다. 심서현 기자

무슨 일이야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 팜’ 출범식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디캠프)에서 열렸다. 주제는 이랬다. ‘타다를 다시 생각한다-우리 사회의 스타트업이란’.

‘직방금지법’ 막아줄까...국회 연구모임에 스타트업 총출동

모임 공동대표인 강훈식(더불어민주)·김성원(국민의힘) 의원은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사회적 논란을 겪으며 지원 동력이 약화됐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가 위축되는 실질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타다라는 혁신 산업이 좌절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스타트업의 요구를 경청하고 법안으로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유니콘 팜’은 유니콘 기업을 키워내고 지원하겠다는 의미.

김한규·박상혁·이소영·이용빈·전재수(이상 민주) 의원, 이용·정희용·황보승희(이상 국힘) 의원이 모임 정회원이며, 이날 행사에는 준회원인 배현진·김병욱(이상 국힘) 의원과 장철민(민주) 의원도 참여했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축사했고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스타트업얼라이언스를 포함해 국내 20여 개사 스타트업 대표·임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유니콘팜 공동대표인 강훈식(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원(왼쪽) 국민의힘 의원. 사진 강훈식 의원실

유니콘팜 공동대표인 강훈식(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성원(왼쪽) 국민의힘 의원. 사진 강훈식 의원실

무슨 의미야

이날 출범식은 ‘스타트업 삼중고’ 가운데 열렸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스타트업계 투자가 크게 줄었고, 지난달 카카오톡 사태 이후 온라인 플랫폼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사협회(의협)·치과의사협회·건축사협회 같은 직역 단체가 뭉쳐 로톡·강남언니·직방 같은 플랫폼에 반대하고 나섰다.

화룡점정을 찍은 건 지난달 김병욱(민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직방금지법’(공인중개사법 개정안). 공인중개사협회를 변협·의협 같은 법정단체로 만들어 공인중개사들이 의무 가입하게 하고, 협회에 회원의 지도·감독 권한을 주는 내용이다. 협회가 직방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사실상 제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

업계 위기감을 보여주는 듯, 출범식에는 김범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대표와 안성우 직방 대표, 배보찬 야놀자 대표, 이나리 컬리 부사장,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 박춘화 쿠카 대표, 유정범 메쉬코리아 의장, 정지은 코딧 대표 등 업계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김범준 대표는 “스타트업 발전 과정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역동성에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안성우 대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스타트업들이 잘못하면 고사할 수준”이라고 했다.

왜 중요해

스타트업 1차 전선이 타다와 택시업계 간 ‘구산업 대(對) 신산업’이었다면, 2차전은 ‘전문가단체 대 플랫폼’ 양상이다. 택시업계가 ‘30만 기사 표심’을 내세워 국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변협·의협 같은 직역 단체는 협회의 권한(징계권)과 소송전을 통해 스타트업에 직접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타트업으로서는 규제 법안의 발의·통과를 막아야할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국회를 우군으로 둬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날 출범식의 스타트업 발표 또한 전문 직역단체와 갈등 중인 강남언니·로톡 사례였다. 엄보운 로톡 이사는 “아무리 합법이라고 얘기해도 (협회는) 반복적으로 고소·고발한 뒤에 ‘너희는 불법 서비스’ 라는 프레임을 씌운다”고 했다. 변협은 지난해 협회 규정을 고쳐, 로톡 등 민간 온라인 법률 플랫폼에 회원(변호사)들이 가입해 광고하는 것을 금지했다. 로톡은 헌법소원을 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변협 규정에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변협은 지난달 징계위원회를 열어 로톡을 이용한 변호사 9명에 대해 회칙 위반을 이유로 최대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후 로톡 측은 징계 받은 변호사들의 법무부 변호사 징계위원회 이의신청을 지원, 양측의 갈등은 진행 중이다.

강남언니 홍승일 대표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힐링페이퍼(강남언니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강남언니 홍승일 대표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힐링페이퍼(강남언니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걸 알아야 해

유니콘 팜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스타트업 지원을 약속했다. 장철민(민주) 의원은 “스타트업계가 엄혹한 분위기이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함께 호흡하겠다”고 했고, 김병욱(국힘) 의원은 “전통 질서와 현실 에너지가 부딪힐 때 국회가 한쪽 편만 세게 드는 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공동대표인 강훈식·김성원 의원은 “스타트업을 위한 입법공동체가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카카오톡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은 ‘온라인플랫폼 규제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했고, 정부 여당의 ‘자율 규제’ 기조마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 직방금지법에는 민주·국힘·무소속·정의당 의원 총 24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려 ‘초당적’ 협력을 한 데다, 법안 소관 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에만 발의자가 10명 이상 포진해 있다. 여러모로 동력이 있다는 얘기.

유니콘 팜 정회원인 이용빈·박상혁(민주) 의원 역시 직방금지법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이용빈 의원에게 ‘직방금지법 발의와 유니콘 팜 참여가 모순된 것은 아닌지’ 물었다. 이 의원은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의원실에서 한 것이고, 발의한 후에 법안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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