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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아기고양이 열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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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아무 고통도 없이 순식간에 나의 치마폭에 주르르 새끼를 낳은 검정 고양이 묘는 그 새끼들을 중간 방 빈공간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묘는 산에서 지내면서도 새끼들에게 젖을 주기 위해 나의 처소를 자주 드나들었다.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눈을 뜬 새끼들이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새끼를 본 묘는 새끼 한 마리씩을 물고 산으로 갔다.

바쁘게 오가던 묘가 보이지 않아 나중에 새끼들이 있던 곳을 가 보니, 두 마리의 새끼는 데려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나는 묘가 한 마리씩 새끼를 물고 산속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힘겨워서 못 데려간 줄 알고, 두 마리를 상자에 담고 타월로 덮어 묘가 오가던 길목에 갖다 놓았다.

그런데 한참 후에 가 보아도 그 두 마리 새끼들을 데려가지 않았다. 한참 후에 또다시 가 보아도 그대로였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가을바람이 차가운데 새끼들을 길바닥에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도로 데리고 왔다. 새끼들이 배고플 것 같아 우유를 사다가 그 두 마리 새끼 입에다 떠 넣었으나 반도 안 들어가고 흘렀다. 어미 품 대신 수건으로 덮어 주었다. 그 두 마리의 새끼가 가엾어서 내 마음은 저려왔다. 나는 꼼짝없이 묘 새끼 두 마리의 보모가 됐다. 우유 먹이는 것부터 똥 싸고 오줌 싸는 것을 뒤치다꺼리해야만 했다.

어미 고양이가 안 데려간 두 마리
정성 다해 돌봤으나 저 세상으로
적막한 집에 고양이 가족 돌아와

그러던 어느 날 묘는 오랜만에 나에게로 왔다. 나는 얼른 묘의 새끼 두 마리를 묘 눈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도 묘는 그 두 마리의 새끼를 보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새끼들도 어미 곁으로 가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어미가 네 마리의 새끼만 기르려고 마음을 정한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 두 마리의 새끼에게 일천정성을 바쳤다. 그런데 두 마리 새끼 중 한 마리가 비실거렸다. 그 한 마리에게 마음이 더 쓰여 우유도 더 자주 먹여보곤 했다. 나는 급한 일로 잠시 밖에 나갔다 와서 얼른 새끼들을 살펴보니 그 비실거리던 놈이 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나는 손에 들었던 가방만 놓고 그 새끼 고양이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새끼 고양이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만 쳐다보았다. 눈을 한 번도 깜박이지 않았다.

나는 그 새끼 고양이가 눈으로 말하는 슬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왜 우리 엄마는 우리를 안 데려갔대요? 왜 우리만 내버렸대요? 너무 슬퍼요. 너무 쓸쓸해요. 아무리 교무님이 우리에게 일천정성을 쏟아도 엄마 없이는 더는 못 살겠어요…”라고 하는 애절한 호소를 듣고 있는 사이 그 새끼 고양이는 나의 두 손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내 눈에서는 더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한지에 그 새끼고양이를 곱게 싸고 예쁜 끈으로 묶었다. 그 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초상집처럼 침울했고 밤새 불을 밝혀 두었다. 다음 날 아침 산비탈에다 그 새끼 고양이를 묻었다. 한 마리 남은 새끼 고양이는 잠시도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 새끼 고양이는 자꾸만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 새끼 고양이를 품속에 품고 있었다.

나는 남은 새끼 한 마리를 꼭 잘 키워볼 생각으로 고양이 우유통과 젖꼭지도 마련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새끼의 배설물이었다.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새끼는 배설물을 아무 데나 질질 흘렸다. 나는 ‘저 새끼에게 기저귀를 채울 수는 없을까’하고 마치 그것이 가능하기라도 하듯 열심히 생각해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묘’가 나를 찾아왔다. 어미도 새끼도 서로 모르는 척했다. 그 알 수 없는 동물의 비정함이 놀랍기만 했다. 똘망거리면서 잘 크던 그 새끼도 어느 날 새벽 내 침대 아래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생명이 있는 것과 정을 나누다 죽어 헤어지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우리 묘는 다산형(多産型)이었다. 아직 그 네 마리의 새끼들이 다 크기도 전에 묘는 또 배가 불러왔다. 나는 묘와 새끼들이 함께 있을 때 “묘야, 네가 또 새끼를 낳으면 그때는 난 모르겠다”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묘가 어느 날 저의 권속 모두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몇 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산에다 대고 “묘야, 묘야, 새끼들이랑 어서 빨리 돌아와”라고 소리쳐도 묘는 돌아오지 않았다.

묘 권속이 떠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적막강산이었다. 궁리 끝에 그들이 오르내리는 산 길목에다 사료 그릇을 가져다 놓았다. 신기하게도 그 사료가 없어졌다. 나는 또다시 정성스럽게 사료를 길목에 갖다 놓곤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묘 권속이 모두 돌아왔다.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