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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중국·러시아 발 ‘퍼펙트 스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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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얼마 전 JP모건체이스는 내년 중국과 러시아에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닥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두 나라를 ‘trouble spots(분쟁 잦은 지역 또는 골칫거리)’로 묘사했다. 중국은 부동산 위기 탓에 투기등급 기업의 20%가,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로 투기등급 기업의 66%가 디폴트를 선언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신흥국 시장 전체에서 투기등급 회사채의 디폴트 비율이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역사적 평균치의 3배를 웃돈다. 중국 부동산 부문의 경우 디폴트 비율이 올해 52%에 이어 내년에도 46%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한다. 또 러시아 기업의 디폴트가 280억달러(약 38조2000억원) 추가로 발생할 것이며 이는 아직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은 채권의 66%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서방국가의 제재로 달러 표시 채권을 상환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중국·러시아발 경제 충격파가 임박했다는 말이다.

중국은 현재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수출이 늘면 한국 수출도 뛰는 시절이 이어졌다. 2010년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였지만 2018년 26.8%로 정점을 찍은 뒤 요즘엔 23%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가량을 중국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러시아는 수출 비중이 1.5% 가량에 불과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지역에 에너지 대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은 약하지만 유럽을 통한 간접적인 충격이 훨씬 더 강할 수 있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미국·유럽연합(EU)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한국 무역은 특정 지역에 쏠려있다. 그만큼 이 세 지역의 경제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는 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개방형 통상국가인데다 특정 국가와 무역 쏠림까지 심하니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중·러 기업 내년 디폴트 급증 전망
중국 무역의존도 큰 한국에 영향
이제 세계경제 ‘영구적 위기’ 상황
경제 기초체력 높이는 노력 필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달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당장 수정안 투표를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달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식에서 당장 수정안 투표를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주변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는 현재를 힘들지만 끔찍할 정도는 아니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내년엔 상황이 나빠지면 성장률·수출 둔화, 금융시장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밀려오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경제 성장이 더디다. GDP 증가율은 올 1분기 4.8%, 2분기 0.4%, 3분기 3.9%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중 제재를 비롯해 중국의 코로나 봉쇄, 반기업적 정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결정된 뒤 중국에서 이념이 실용주의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주된 관심사가 ‘정치적 의제’이다 보니 경제는 뒷전으로 밀릴 것이란 우려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기업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주춤하던 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다고 전문가는 진단한다. 특히 중국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부동산 문제는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완성 상태로 방치된 주택이 중국에 200만채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과 유럽국가는 중앙은행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내년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여파는 한국 경제에 고스란히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달 한국 수출은 5.7% 감소했다. 2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무역수지는 7개월 연속 적자다. 중국 수출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기초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개방형 통상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면 펀더멘탈(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외풍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돼야 한다. 우선 특정국에 쏠려 있는 무역을 다변화하고 초크포인트(chokepoint), 즉 핵심기술을 국내에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면 한국 경제는 더욱 뿌리 깊은 나무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존 관행에 안주하려는 데서 벗어나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핵심기술을 발전시키는 기업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도 뒤따를 필요가 있다. 영국 콜린스 사전이 ‘2022년 올해의 단어’로 ‘영구적 위기(permacrisis)’를 선정했다. 영구적 위기 상황에선 ‘최상을 희망하지만 최악에 대비하는’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