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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력미달 10년 새 6배, 전공·직업 미스매치는 OECD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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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표류하는 교육정책

윤석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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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설적 투자가 레이 달리오는 번영의 필수 요건으로 교육을 꼽았다. 500년간 방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선진국의 발전 원리를 연구한 결과다. 그는 “교육수준이 높아야 기술혁신을 이끌고 생산성과 군사력을 키워 강대국이 된다”고 했다(『변화하는 세계질서』). 당연해 보이지만 이를 실현한 국가는 몇 개 안 된다.

번영의 첫 단추는 교육

1581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네덜란드는 다양한 인재를 받아들여 신문물을 빠르게 흡수했다. 교육투자를 대폭 늘려 네덜란드의 대학 수는 유럽 전체 대비 1600년 1%대에서 1700년 6%대로 증가했다. 출판물 비중도 같은 기간 1%대에서 8%대로 급증했다. 교육의 발전으로 지식수준이 높아졌고 국부가 증대했다.

경제사학자인 앵거스 매디슨은 네덜란드의 1인당 GDP가 1600~1700년 1381달러에서 2130달러로 증가했다고 설명한다(『매디슨 프로젝트』). 1700년 네덜란드의 경제력은 영국(1250달러), 독일·프랑스(910달러)를 압도했다. 달리오는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의 3분의 1을 차지했고, 길더화는 최초의 기축통화였다”고 했다.

교육력 높여야만 선진국 도약
서울대 1학년 26% 영어기초반
삼성·현대 등 신입 80% 이공계
스탠포드 컴공 정원 141→745명

뒤이은 영국·미국도 비슷한 원리로 번영의 길에 올랐다. 교육수준이 높아져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국부가 커졌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근대교육에 힘쓰며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간 일본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는 그 원인 중 하나가 쇠퇴한 교육력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노구치 유키오 전 도쿄대 교수는 침체 원인으로 아베노믹스와 기술혁신의 실패, 교육의 쇠퇴 등을 꼽았다. 그가 개발한 고등교육력 지수에서 일본(1.6)은 영국(16.4), 미국(11.5)에 한참 못 미친다. 그는 “1970년대 영·미처럼 교육력이 강한 나라는 침체에 빠져도 바로 회복한다”고 했다(『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

문제는 한국 또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교육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기초학력미달 학생의 급증과 교육·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의 심화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수인재 공급에 차질을 빚고 산업과 고용의 불균형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국가적 낭비”라고 지적했다.

잃어버린 교육 10년

한국은 교육을 통해 성공한 나라로 통했다. 해방직후 문맹률이 78%에 달했지만, 1949년 교육법 제정 후 인적투자에 힘 쏟았다. 1967년 직업훈련법을 제정해 산업역군을 기르는데 초점을 맞췄고, 1970~80년대 학교와 대학은 고도성장의 동력이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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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김영삼 정부는 5·31 교육개혁으로 창의·인성을 키우는 선진국형 교육제도의 근간을 마련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암기 위주의 교육을 탈피해 학생들의 적성을 계발하는 다양한 입시 방안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학교 다양화 정책으로 학생들의 선택권을 높였다.

그러나 박근혜·문재인 정부는 교육정책의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2012~2021년 기초학력미달 중학생 비율이 국어 1%→6%, 수학 3.5%→11.6%, 영어 2.1%→5.9로 급증했다. 국어는 6배, 수학은 3.3배, 영어는 2.8배로 늘었다. 고등학생도 같은 기간 국어 2.1%→7.1%, 수학 4.3%→14.2%, 영어 2.6%→9.8%로 증가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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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저학년부터 학력 결손이 누적된 결과”라며 “정책적으로 학력을 덜 중시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석차 등급을 제공하지 않고, 자유학기제 등으로 학업에 집중 못 했기” 때문이다. 주 교장은 “2018년 수능 절대평가 백지화처럼 ‘정무적 판단’에 따라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했다”고 밝혔다.

학력저하는 대학으로 이어졌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신입생의 26.3%(영어)는 학력수준이 떨어져 기초영어 수업을 들었다. 2012년(12.9%)과 비교해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김 의원은 “학력미달 학생이 늘어난 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공·직업 불일치 심화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활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늘고 있어서다. 김병규 넷마블 경영기획담당(COO)은 “매년 60명가량 신입사원을 뽑는데 이과 출신이 70%”라고 했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대기업도 2018~2020년 신입사원의 80%가량이 이공계였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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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COO는 “IT산업의 고도화로 이공계 수요는 높지만 대학은 여전히 문과 중심”이라고 지적했다. 올 상반기 500개 기업의 채용계획에 따르면 61%가 이공계 몫이었는데, 지난해 4년제 대학 졸업생은 인문계(43.5%)가 이공계(37.7%)보다 많다. 고교에선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과 선택 비율이 높지만, 대학이 못 따라가고 있다.

2024학년도 고려대 입시요강에서 영어영문학과 정원은 100명으로 3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다른 6개 어문학과도 35~51명씩 모집한다. 반면 산업수요가 높은 차세대통신학과와 반도체공학과는 정원 외로 30명만 뽑는다. 대학의 전공 구조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수십 년째 과거의 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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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정원도 80명뿐이다. 15년간 55명이었던 정원을 2020년 이후에야 증원했다. 반면 스탠포드대는 엔지니어 수요가 급증하자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2008년 141명에서 745명으로 늘렸다. 김 COO는 “산업 변화에 발맞춰 전공 수요를 발 빠르게 조정해야만 기업과 대학 모두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전공과 직업이 불일치한다고 응답한 4년제 대졸자의 비율이 2010~2020년 29.7%→33.7%로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청년(25~34세) 고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전공·직업 간 미스매치가 심각한 나라로 한국(50%)이 22개 국가 중 1위였다.

교육혁신으로 노동생산성 높여야

제주반도체는 제주대와 협약을 맺고 엔지니어들이 직접 ‘설계 개념 이해’ ‘집적회로 제조공정’ 등 과목을 가르친다. 방학 때는 멘토링과 현장실습도 지원한다. 현재 100여명의 직원 중 42명이 제주대 출신이다. 조형섭 대표는 “회사는 직접 인재양성에 관여할 수 있고, 학생들은 안정적으로 취업할 수 있어 윈윈”이라고 했다.

그러나 단기 교육과 현장실습만으론 한계가 있다. 조 대표는 “체계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대기업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며 “산학연계 비용을 연구개발비로 인정해 세제 혜택을 주거나, 채용장려금 등을 지급한다면 지역 기업과 대학 모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스매치를 줄이기 위한 더욱 근본적인 방법은 대학의 혁신이다. 한국교육학회장을 지낸 김성열 경남대 명예교수는 “전공 이기주의를 버리고 학과 간 장벽을 허물어 여러 전공이 합쳐진 융합 학습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선 사회에서 꼭 필요한 범용성 높은 지식을 다수 학생들이 배우게 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인문계 학생들도 기초적인 코딩이나 컴퓨팅 능력을 학습한다면 취업 시 전공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며 “연구중심 대학이 아닌 한 취업에 필요한 전공을 중심으로 정원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력을 높이고 미스매치를 줄이는 것은 저출산 시대에 필수다. 지난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는 “생산연령인구가 2020년 3738만 명에서 2040년 2852만 명으로 줄어든다”며 “교육개혁으로 인적자본의 질적 역량을 강화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1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2.7달러로 OECD 38개국 중 29위에 불과하다. 평균(55.8달러)에도 한 참 못 미친다(전국경제인연합회). 김중백 교수는 “노동력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양성해 배치한다면 저출산 시대에도 경제는 연착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열 교수는 “교육과 일자리의 미스매치만 줄여도 노동생산성이 크게 올라간다”며 “중·고교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의 재능이 낭비되지 않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학생이 입시에 매몰된 구조를 바꾸고, 마이스터고·특성화고 등 다양한 진로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