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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태원 특수본, 지위고하 막론하고 책임 규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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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서울 용산경찰서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특수본은 이날 4개 기관 55곳을 압수수색했다. [뉴스1]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8일 서울 용산경찰서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뒤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특수본은 이날 4개 기관 55곳을 압수수색했다. [뉴스1]

예방·대응 시스템 무너지며 인명피해 늘어

주무부처 장관 잇따른 실언도 실망스러워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핼러윈 참사’ 관련 사망자가 어제 158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 고위 공직자들에겐 법적·정치적 면죄부를 주고, 일선 중하위직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수사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는 수사에서 누구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난 지난 6일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했고, 대통령실은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대통령의 말대로 유사한 비극을 막으려면 철저한 원인 규명, 법과 제도상 미비점 대수술뿐 아니라 관련 공직자들이 잘못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리는 후속 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와 고위 공직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지난 1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이번 사고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말로만 사과했을 뿐 법적 책임에 앞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고위 공직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특히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진 주무부처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쏟아내 빈축을 사고 있다. 야당의 사퇴 압박이 계속되자 이 장관은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냐”고 밝혀 논란이 됐다. 판사 출신이라 법리를 강조하지만 민심과는 괴리가 커 보인다.

공무원노조총연맹 소방청 지부는 어제 이 장관을 직무유기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소방공무원들은 경찰 특수본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자 책임 전가라며 반발해 왔다. 하위직들의 불만이 커지는 와중에 급기야 지난 11일에는 용산경찰서 정보계장과 서울시 안전지원과장이 갑작스럽게 숨지는 일도 있었다.

특수본은 이번 주부터 피의자 수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 서장과 사고 당시 112치안종합상황실 상황관리관이었던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 등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셀프 수사’ 우려 와중에 이미 경찰청장실까지 압수수색한 특수본은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정치적 중립을 견지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일선부터 윗선까지 사전 예방과 사후 대응 시스템이 철저하게 무너지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위가 낮다고 예외를 둘 일도 아니고, 지위가 높다고 법망을 빠져나가도록 해서도 안 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책임소재를 가려내는 정공법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