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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정한 애도"…유족 동의없는 155명 이름 공개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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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르는 게 애도의 출발점이다. 한 언론으로서 상주가 돼 희생자의 이름을 호명하는 취지다. 유가족의 슬픔을 사회가 같이 짊어지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하려는 거다.”(1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명재 시민언론 민들레 대표)

“지금 상황에서 이름 공개로 유가족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공개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구의 자리에서 바라본 정의인지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14일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 페이스북)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뉴스1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뉴스1

인터넷 매체 민들레가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명단을 공개해 파장이 예상된다. 희생자 실명 노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명단 게재여서다.

민들레는 이날 자사 홈페이지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155명 공개합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엔 ‘참사 발생 16일 만에 이름 공개, 진정한 애도 계기 되길’이란 문구와 함께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 155명(지난달 31일 기준)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실렸다. 155명 명단에 외국인(한국계 2명 포함) 23명의 영문 이름도 포함됐다. 얼굴과 사진, 나이 등 별도 인적 사항은 담기지 않았다.

민들레 측은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며 “명단 공개를 계기로 위령비 건립 등 각종 추모 사업을 위한 후속 조치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 명단공개 논란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 때 국가보훈처가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를 거부하고 대법원이 이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의 명단도 비공개가 정당하다면, 유족 대다수가 원치 않는 이태원 희생자 명단은 왜 공개되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내 아들의 이름과 얼굴을 가리지 말라는 오열도 들린다”면서도 “당연히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가족의 동의를 전제로 했지만, 공개 쪽에 힘을 싣는 발언이었다. 다만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8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그분들의 명단을 다 공개하자는 얘기를 외부인이 먼저 한다? 이거는 정말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라며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시민들이 놓아둔 추모 글귀 등을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시민들이 놓아둔 추모 글귀 등을 바라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명단 공개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민들레 측이 희생자 실명을 그대로 게재하면서 온라인에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A 커뮤니티에선 “유족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데 왜 억지로 공개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댓글이 이어졌다. 반면 B 커뮤니티엔 “이렇게 하나하나 이름을 보고, 그것도 하나같이 젊은 사람인 걸로 느껴지는 실명을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안타깝고 가슴 먹먹해진다”는 댓글이 달렸다.

“동의 없는 명단 공개 처벌해야”

여권을 중심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명단 공개는 처벌 대상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의 사진 및 영상을 유포한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대응 TF’도 이날 성명을 내고 민들레 측의 희생자 명단 공개 철회를 요청했다. TF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정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보호의 원칙에 따라 희생자들의 명단이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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