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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살해' 꺼냈다…딸 죽어도 푸틴 신봉한 '푸틴 브레인' 돌변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한 것과 관련, '푸틴의 철학자'로 불렸던 알렉산드르 두긴(60)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공공연하게 비판하며 푸틴의 전쟁 수행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13일 일본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의 사상가인 알렉산드르 두긴은 헤르손 철수와 관련해 이같이 언급했다. 두긴은 푸틴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절대 권력자는 나라를 지킬 책임이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비의 왕'과 같은 운명이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8월 23일 푸틴의 철학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이 자신의 딸 다리야를 떠나보내며 추도사를 하고 있다. 다리야는 지난 8월 차량 폭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AP=연합뉴스

8월 23일 푸틴의 철학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이 자신의 딸 다리야를 떠나보내며 추도사를 하고 있다. 다리야는 지난 8월 차량 폭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AP=연합뉴스

'비의 왕'은 영국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고대 종교 연구서에 등장한다. 가뭄 속에서 비를 내리지 못한 왕은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인류 역사에는 힘을 다한 왕은 빨리 제거하고 새로운 인물로 교체해야 재난이 사라진다는 이른바 '왕(王)살해'관념이 있었다.

영국 언론은 "굴욕적인 헤르손 철수를 두고, 푸틴의 브레인인 두긴이 (왕 살해라는) 소름 끼치는 비유를 써서 푸틴을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두긴은 "우리는 지도자에게 절대 권력을 주고, 그는 우리 모두를 중요한 순간에 구원한다"라고도 했다. 바꿔 말해 중요한 순간에 구원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리더 자격이 없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극우 사상가인 두긴은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을 제공한 ‘유라시아니즘’(Eurasianism)의 창시자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획자'로 불린다.

그는 그간 푸틴 대통령에 대해 "절대적이고 대체 불가능하다"고 극찬해왔다. 2007년 저서 '푸틴 대 푸틴'을 통해서는 "푸틴은 실증적이고 조심스러운 달과 같은 속성, 유라시아 제국의 부활을 추구하는 태양 같은 속성을 다 지니고 있다"고 전했다.

그랬던 두긴이 푸틴의 헤르손 철수에 대해 비판한 것은 둘 사이에 모종의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알렉산드르 두긴(사진)은 푸틴의 브레인이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을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알렉산드르 두긴(사진)은 푸틴의 브레인이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을 제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 내부에서는 헤르손 철수를 두고 격앙된 분위기가 전해진다.

아사히신문은 미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를 인용해 러시아 국영 TV 진행자가 헤르손 철수과 관련, 무능한 러시아 당국자의 해고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러시아 군사 블로거 중에서도 이번 철수를 국가에 대한 배신 행위로 보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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