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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저널리즘의 생명은 ‘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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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유학 시절의 지도교수는 논문에 사용한 원자료(raw data)를 엄격하게 관리할 것을 늘 강조했다. 제자들에게 논문의 근거가 된 자료는 원형 그대로 영원토록 유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통계분석을 위한 설문지 응답 자료를 입력할 때도 ‘아무도 믿지 말고 반드시 자신이 하라’면서 사랑하는 애인이나 친구에게도 맡기지 말라고 하였다. ‘사실’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라는 의미였다. 그는 공부하는 인생의 엄혹함을 알게 하고, 내 로맨티시즘에 조종을 울린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 자체에 충실하라’는 프로페셔널리즘을 각인시켜주었다.

지도교수의 ‘사실 강조’가 떠오른 것은 지난달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때문이었다. 김 의원은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첼로가 연주되는 고급 룸바에서 새벽까지 김앤장 변호사 30여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국내 최대의 법률이익집단의 그 많은 변호사들과 대통령과 장관이 심야에 어울렸다면 공적 권력과 사적 이익의 합석 같은 ‘어두운 의혹’이 된다. 한 장관은 이에 대해 자신의 직을 걸고 ‘허위 가짜정보’라고 단언하였다. 대통령은 “저급하고 유치한 가짜뉴스 선동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며 대통령 입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 자체가 “국격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이 자신과 ‘협업’을 하고 있다고 한 ‘더탐사’라는 유튜브 채널은 사실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이 술자리 사안을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언론 자유의 문제로 부각했다.

폭로보도, 스캔들 보도와 달라
돈벌이 유튜브,이전투구 아닌
‘사실’에 집중하고 책임지는 것
세상 어지럽히는 혹세무민 안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번 술자리 의혹 보도는 저널리즘 전통에서 보면 ‘폭로(muckraking) 저널리즘’에 속한다. 폭로 저널리즘의 출발은 강력한 현실 비판적 사실성에 충실한 보도유형으로 흥미위주, 선정적, 외설적 성격을 띠는 타블로이드 저널리즘과는 차별된다. 폭로 보도는 미국이 흥청망청 발전하던 1900년을 전후한 시대에 기득권 권력·자본·제도가 지니는 추악하고 비정한 현실을 고발하고 고통당하는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자세히 전달하기 위하여 사실성 부각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증거, 체계적인 자료, 객관적인 치밀한 묘사, 이야기체(narrative) 서술, 문학의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표현기법을 차용하였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했다.

폭로 보도의 전통은 1960년대 자동차 산업의 문제점을 낱낱이 밝힌 보도와 1970년대 현장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파헤친 고발 보도로 이어져 왔다(『American muckraking of technology since 1900』, Stein). 폭로 저널리즘은 스캔들 보도와는 다르게 ‘문제의 사실에 집중’함으로써 사실과 허구를 혼동하지 않고, ‘국가적 차원’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었다(『Mainstreams of American media history』, Ward). 근래 돈벌이 목적의 추문 가십 수준의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의 무책임한 폭로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은 폭로 저널리즘의 전통을 욕보이는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술자리 공방과 관련하여 더불어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 2명과 정책위 의장이 의혹을 확신하는 발언을 하고, 당 차원에서 사실을 파헤치겠다며 TF를 구성했다. 반면에 법무부장관은 가짜정보로, 대통령은 가짜뉴스 선동으로 규정했다. 이제 정확한 사실 규명은 루비콘 강을 건넌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바라건대 TF는 진상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김 의원과 ‘더탐사’는 적극적인 취재와 협업을 통해 스스로 예고했듯이 추가적으로 진실을 밝혀가기 바란다. 물론 폭로 저널리즘이 생명처럼 여기는 ‘사실 정보’, 즉 육하원칙에 따른 정확한 정보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당파적이고 추상적인 정치논쟁, 진영논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려야 하지만, 사실에 대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사라지고 이전투구의 진흙탕 속으로 매몰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에 바탕 하지 않은 주장은 국민을 속이는 거짓이다. 혹세무민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거짓은 책임을 져야 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 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