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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반대합니다" 간 큰 이사회, 최태원이 더 힘 실어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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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 SK그룹

“이사회 역량을 강화해 독립경영이 가능한 수준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13일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달 31일 열린 ‘디렉터스 서밋’에서 이같이 말하며, 이사회 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이사회=거수기’란 과거 통념을 깨고, 전문성을 가진 개별 이사들에게 힘을 실어줘 회사의 거버넌스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SK그룹은 ▶사외이사 후보군 구성 ▶이사회 업무 지원 포털 구축 ▶사외이사 정례모임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지배구조 혁신 방안을 내놨다.

먼저 재무·글로벌·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에 관련한 전문성, 연령·성별 등 다양성이 반영된 ‘사외이사 후보군’을 내년 신규 선임 수요가 있는 관계사와 공유한다. 적시 적소에 인재를 확보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다는 게 SK 측의 설명이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경영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 시스템도 도입한다. 포털 시스템에는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과 회의자료 등이 게재된다. SK㈜·SKC 이사회에 시범 도입한 뒤 다른 관계사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SK 관계사 사외이사들이 모여 그룹 주력사업에 관한 산업 동향과 이사회 역할을 논의하는 ‘디렉터스 서밋’을 정례화한다. 지난달 31일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처음 열린 디렉터스 서밋엔 15개 관계사 사외이사 54명이 참석했다. 전기차 배터리 및 인공지능(AI) 국내·외 산업의 동향을 살펴보고,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최고경영자(CEO) 평가와 보상제도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SK그룹의 ‘이사회 혁신’은 2~3년 전부터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8월 SK㈜ 이사회에선 ‘회장님 말씀’에 반기(?)를 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해외 사업 추가 투자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1대 주주이자 사내이사인 최 회장이 “직접 투자 대신 전략적 투자자 유치를 돕자”고 투자 안건에 반대했지만, 이사 9명 중 7명이 찬성하며 결국 추가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관계사에서도 마찬가지다. SKC 이사회는 지난해 9월 경영진이 추진하던 영국 음극재 기업 ‘넥시온’과 합작투자 안건을 부결시켰다. 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지난 2월 경영진의 ‘무배당’ 제안에 반대하며 현물 배당을 의결했다.

재계에선 이사회가 경영진 안건을 부결시킨 건 이례적인 일이란 시각이 크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기업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며 이 같은 변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후문이다. SK 관계자는 “이사회는 기업 경영을 감시·견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가치를 함께 높이는 동반자라는 시각에서 내실과 체계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염재호 SK(주) 이사회 의장(맨 오른쪽)이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 디렉터스 서밋 2022'에서 SK 관계사 사외이사들과 함께 이사회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지난달 31일 염재호 SK(주) 이사회 의장(맨 오른쪽)이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SK 디렉터스 서밋 2022'에서 SK 관계사 사외이사들과 함께 이사회 역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유창조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기업들이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사외이사를 보강하는 등 개방적인 이사회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원칙에 따라 이사회가 의사결정을 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지배구조를 혁신하는 모습은 기업의 가치와 경영 체계를 높이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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