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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예사롭지 않다" 50년째 민통선 넘는 임진강 어부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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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강 어부 박장진(66·파주시 문산읍)씨는 매일 배를 타고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을 넘는다.

 박씨는 50년째 임진강을 따라 군 장병들이 삼엄한 경계 근무를 서는 초소를 지나 하루 두 차례씩 물 때에 맞춰 민통선을 드나들며 민물고기를 잡는 일을 생업 삼아 왔다. 지난 8일 오후 민통선 내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 임진강 가에서 박씨를 만났다.

지난 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속초 앞바다 미사일 쏜 날…민통선 어로 금지  

박씨는 북한의 미사일이 휴전 후 처음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속초 앞바다에 떨어져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2일 조업을 하지 못했다. 민통선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대북전단 살포, 임진강 이상 물체 발견 시, 안개가 짙을 때 등 1년이면 다섯 차례 정도 출입이 금지되곤 한다”며 “최근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 민통선 내 임진강 변에 정박한 어선에서 어부 박장진씨가 뒷편으로 보이는 임진강 너머 북한 쪽을 가리키고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 민통선 내 임진강 변에 정박한 어선에서 어부 박장진씨가 뒷편으로 보이는 임진강 너머 북한 쪽을 가리키고 있다. 전익진 기자

 박씨는 실향민 2세다. “남북 자유 왕래가 성사돼 아버지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실향민 2세 “아버지 고향 재령 가보고 싶어”

 박씨에 따르면 아버지는 96세가 되던 9년 전 ‘실향민의 한’을 안고 끝내 세상과 이별했다.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 때 혈혈단신 남쪽으로 피난 온 그의 아버지는 북한에 아내와 세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북의 가족을 휴전선 너머 지척에 두고도 상봉조차 한번 못 한 채 생을 마감한 것이다. 박씨의 아버지는 전쟁 중 월남한 뒤 남쪽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출신의 아내와 다시 결혼해 장남인 박씨 등 다섯 자녀를 뒀다.

임진강전망대에서 본 임진강. 사진 경기관광공사

임진강전망대에서 본 임진강. 사진 경기관광공사

박씨 부자가 임진강 어부로 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2년부터다. 서울에 살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온 가족이 파주로 이주했다. 박씨 아버지는 “이왕 시골로 이사해야 하는 마당에 북한 고향과 가까운 곳으로 가자”며 파주 민통선 인근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당시 고교 2년생이던 장남 박씨는 이때부터 학업을 중단한 채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임진강에서 그물질을 시작했다. 박씨는 아버지가 연로해 조업에 나서지 못한 23년 전부터는 혼자 조업하며 대를 잇고 있다.

민통선 내 임진강, 선착장 없어 갯벌에 정박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엔진이 설치된 배의 운항이 금지돼 있어 40여년 간을 손으로 노를 저어 임진강을 오르내렸다. 지금은 엔진이 달린 1t 소형 어선을 운항 중이다.

 박씨는 “30명의 어부가 15척의 소형 어선을 정박하는 내포리 나루에 접안이나 정박시설이 없어 밀물에 맞춰 갯벌에 배를 세워두거나 운항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며 “그 흔한 크레인도 강가에 없어 그물이나 어획물을 옮기는 것도 힘겨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6월 29일 오전 1시 30분쯤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상류 군남댐. 사진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지난 6월 29일 오전 1시 30분쯤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상류 군남댐. 사진 연천임진강시민네트워크

박씨는 요즘 임진강 어부들의 최대 고민으로 임진강 상류 ‘북한 황강댐’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황강댐의 예고 없는 방류로 인해 최근 7년간 자신의 어선 4척이 유실돼 1억원가량의 재산 피해를 봤다고 한다. 그는 “대형 댐인 황강댐(총 저수량 3억 5000만t)에서 수시로 예고 없이 방류하는 바람에 어선은 물론 강에 설치해둔 어구가 대량으로 떠내려가는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북한 황강댐 예고 없는 방류로 어구 떠내려가

 지난달 3일에도 북한이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황강댐 수문을 열어 파주 임진강 100여 명 어부가 강에 설치해뒀던 어구가 모두 떠내려가는 피해를 봤다고 한다. 박씨는 “당시 집중호우에 더해 황강댐 방류까지 겹치면서 불어난 거센 물살에 참게가 하류로 대부분 떠내려가면서 참게 제철인 10월 한 달간 어획량이 역대 최저 수준인 예년 5% 수준으로 떨어지는 피해를 봤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달 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두지리 선착장. 밤 사이 내린 기습적인 집중호우로 참게 잡이 어구가 모두 떠려내간 임진강에서 한 어민이 황톳빛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달 4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두지리 선착장. 밤 사이 내린 기습적인 집중호우로 참게 잡이 어구가 모두 떠려내간 임진강에서 한 어민이 황톳빛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전익진 기자

‘임진강 참게’. 전익진 기자

‘임진강 참게’. 전익진 기자

 임진강 어부들에겐 실뱀장어와 황복을 잡아 올릴 봄을 떠올리는 게 희망이다. 실뱀장어와 참게가 임진강 어부들이 올리는 연간 어획고의 70%를 차지한다. 경기도와 파주시 등은 치어 방류사업으로 이들을 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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