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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되고, 풍산개 안돼? 文∙尹 불신 키운 '시행령 개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일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부속동물병원 앞에서 풍산개 암컷 '곰이'(왼쪽)와 수컷 '송강'이가 대학 관계자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 '곰이'와 '송강'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으로부터 선물 받아 기르다 최근 정부에 반환한 대통령 기록물이다. 뉴스1

10일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부속동물병원 앞에서 풍산개 암컷 '곰이'(왼쪽)와 수컷 '송강'이가 대학 관계자와 함께 산책하고 있다. '곰이'와 '송강'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으로부터 선물 받아 기르다 최근 정부에 반환한 대통령 기록물이다. 뉴스1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오해를 하신 것 같다.”

‘풍산개 논란’ 관련 업무를 다뤘던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이 풍산개를 반납하며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드러내는 현 정부 측의 악의를 보면 어이없게 느껴진다(7일 페이스북)”고 밝힌 것에 대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에 있었다”며 답답해했다. 윤석열 정부 측 인사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선의도 악의의 아닌 시행령 개정의 한계가 문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도 ‘시행령 개정’으로 돌파해 ‘시행령 통치’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정부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선의에서 시작, 악의 논란으로 끝나나 

시작은 선의에서 비롯됐다. 지난 3월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풍산개 질문에 “강아지는 아무리 정상 간에 받았다고 해도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우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라고 답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 ‘곰이’와 ‘소강’을 문 전 대통령이 키우는 게 맞는다는 것이었다. 5일 뒤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만찬 회동에서 양측은 ‘위탁관리’라는 해법을 도출한다. 정상 간 선물은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돼 문 전 대통령이 소유할 수 없지만, 시행령을 개정하면 ‘위탁 관리’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정부는 약속을 이행하려 지난 6월 “대통령기록물 중 선물인 동물·식물의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보존환경을 갖춘 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난 3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상춘재 에서 만찬을 겸한 회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3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상춘재 에서 만찬을 겸한 회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제는 그 뒤였다. 입법 예고 뒤 개정안을 검토한 법제처에서 반대 의견이 나왔다. 시행령은 모법의 위임을 받아 그 의미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모법인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는 ‘위탁 관리’ 조항 자체가 없었다. 검수완박의 경우 법무부는 검찰청법의 “부패범죄·경제범죄 등 중요범죄”라는 문구에서 ‘등’이라는 한 글자를 근거로 검찰 수사 범위를 야당의 입법 의도보다 확대했다.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건 아니었다. 반면 대통령기록물법엔 ‘등’과 같이 시행령이 기댈 작은 근거조차 없었다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검수완박 때와는 달랐다. 법안 자체를 국회에서 고치거나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고 말했다.

검수완박과는 달랐던 위탁관리 논란 

법제처에선 ‘위탁 관리’ 대신 “대통령기록물의 사육 등 보조적 행위를 다른 개인이 할 수 있다”는 시행령 개정안을 제시했다. 이 정도는 모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새 시행령인 만큼 입법 예고를 다시 해야 했는데, 논란이 되는 비용 문제가 덧붙여져 부처 간 논의가 길어졌다. 대통령기록관에서 풍산개 양육 예산으로 월 240만원을 책정했는데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와서다. 그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반납 의사를 밝혔고, 한 언론 보도로 ‘파양 논란’이 촉발됐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애초부터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문 전 대통령은 9일 페이스북에 “지난 6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였으나 결국 개정이 무산되었고, 퇴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기록물법에 위반된다는 논란의 소지가 생긴 것이고, 그러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논란의 소지가 더 커질 것”이라며 “지금의 감사원이라면 언젠가 대통령기록관을 감사하겠다고 나설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진중권 작가도 CBS라디오에서 “검수완박 시행령도 후딱 해서 하던데 이거 하나 6개월을 끌 문제냐”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 측에선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오해해 예고 없이 풍산개를 반납한 것”이란 입장이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입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뒤 문 전 대통령에게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입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뒤 문 전 대통령에게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文과 尹의 불신 드러나”

일각에선 지난 3월과 달리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 사이에서 싹 튼 불신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 양측이 대화만 나눴어도 없었을”이라며 “풍산개 논란은 두 전·현직 대통령이 소통 자체도 불가능할 만큼 서로를 불신하는 모습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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