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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 엎어진 채 600년 견뎠다…마애불 '5cm의 기적', 무슨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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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시 남산 열암곡 마애불 모습. 연합뉴스

경북 경주시 남산 열암곡 마애불 모습. 연합뉴스

“경상도 경주·신령·흥해·청하·영일·밀양·김해·울산·의성·영해·하양·문경·진보·장기·청도 등 고을에 지진이 일었다.”

경주 남산 마애불, 2007년 발견 
세종 즉위 12년의 정사가 담긴 『세종실록』 49권에 적힌 내용이다. 서기 1430년 9월 13일에 경북 경주시를 비롯한 경상도 일대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무려 592년 전에 일어난 지진이지만 오늘날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2007년 경북 경주시 남산에서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磨崖佛)이다. 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으로 인도에서 발생해 한국과 중국·일본 등에 전해진 불상 양식이다.

열암곡 마애불은 산등성이 내리막에 앞으로 엎어진 채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7년 5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열암곡 석불좌상 보수를 위해 작업하던 중 이 마애불을 발견했다. 불상 얼굴이 바닥과 불과 5㎝ 간격을 두고 부딪히지 않아 ‘5㎝의 기적’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불상 발견 직후 문화재청은 마애불을 바로 세우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무게가 70~80t에 달하고 너비 2.5m 두께 1.9m, 높이 6.2m의 규모라 원형 손상 없이 바로 세우는 일이 어려웠다. 불상이 40~50도 경사진 사면에 있다는 점도 복구 작업을 어렵게 했다.

경북 경주시 남산 열암곡에 쓰러진 마애불과 불상을 둘러싼 보호각을 방문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경주시 남산 열암곡에 쓰러진 마애불과 불상을 둘러싼 보호각을 방문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5세기 지진으로 무너진듯 
열암곡 마애불은 과거 큰 지진 때문에 넘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북도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시행한 연구 결과, 불상은 약 600년 전 넘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연도를 좁히면 진도 7 안팎의 지진이 잇따랐던 1430년이 유력하게 꼽혔다.

불상 축조 시기는 인근에서 발견된 토기를 대상으로 연대 측정을 한 결과 8세기 후반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축조·전도 시기는 광물이 발광하는 현상을 이용, 시료가 묻힌 지층 연대를 측정해 추정했다.

발견되고도 15년 이상 엎어진 채로 있어야만 했던 열암곡 마애불은 최근 불교계가 원상복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다시 세워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달 31일 열암곡 마애불 바로 세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고불식을 열암곡 일원에서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조계종 총무원 진우 스님을 비롯해 경북 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등이 참석했다. 행사에 앞서 이들은 마애불 앞에서 108배를 하며 부처를 바로 모시지 못했음을 참회했다. 동시에 부처를 바로 세워 불교중흥을 이룰 것을 기원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진우 총무원장 등 승려들이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시 내남면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앞에서 엎어진 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의지를 밝히는 고불식의 하나로 108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불교 조계종 진우 총무원장 등 승려들이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시 내남면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앞에서 엎어진 불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의지를 밝히는 고불식의 하나로 108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사에서 진우 스님은 “이곳 경주 남산에는 천 년을 쓰러져 계신 마애부처님을 온전히 모시기 위한 사부대중의 간곡한 원력이 모였다”면서 “지금 이 자리, 간절한 서원으로 마애부처님을 바로 모셔 천 년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경북도와 경주시도 열암곡 마애불 바로 세우기 운동에 동참하는 한편 불상이 원상 복구되면 경북의 대표적인 명소로 활용할 방침이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현재 용역을 통해 마애불상을 어디에 세울지를 연구 중이다”며 “불교계와 학계 등과 협력해 마애불을 바로 세우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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