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 인플레 둔화 신호에 코스피·원화 가치 급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3호 01면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정점을 지났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모처럼 증시가 급등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통화긴축(기준금리 인상) 강도가 약해질 것이라는 기대감 덕분이다.

시장에선 한국은행도 2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선 금리 인상 속도가 늦춰지더라도 완화적 통화정책이라 해석하기 어려운 만큼 섣부른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11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3.37% 오른 2483.16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8월 26일(2481.0) 이후 77일 만에 2480 선을 회복했다. 코스피가 3%대 상승폭을 기록한 건 지난해 1월 8일(3.97%) 이후 1년 10개월여 만이다. 코스닥 지수도 전날보다 3.31% 오른 731.22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긴축과 상극인 ‘성장주’가 약진했다. 카카오페이는 상한가를 기록했고, 카카오와 네이버도 각각 15.55%, 9.94% 급등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도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4.14% 오른 6만2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6월 13일 6만2100원 이후 5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이다. 전날 상장 후 최고가(60만5000원)를 기록했던 LG에너지솔루션은 3.14% 올라 62만4000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도 4.94% 상승했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금리 상승과 함께 하락 폭이 컸던 만큼, 금리 상승 둔화 신호에 더 크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6921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원화 가치도 전날보다 59.1원 오른 달러당 1318.4원에 거래를 마쳤다. 1310원대를 밟은 건 지난 8월 17일(1310.3원) 이후 처음이다. 하루 상승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4월 30일(4.38%) 이후 최대다. 코스피와 원화 가치를 끌어 올린 건 미국 CPI 상승률이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청에 따르면 10월 CPI는 전년 동월보다 7.7% 상승, 8개월 만에 7%대로 내려왔다.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6.3%로 4개월 만에 상승세가 꺾였다. 이를 두고 인플레이션 ‘피크 아웃’(정점 통과)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이날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도 전날보다 3.7% 뛴 3만3715.37에 거래를 마쳤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7.35% 급등한 1만1114.15에 장을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도 5.54% 올랐다. 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의 상승폭은 2020년 4월 이후 가장 컸다.

“한달 데이터로 인플레 못 꺾어” 연준, 과도한 기대감 선 그어

미국 물가 정점 통과 기대감 속에 11일 코스피가 80.93포인트(3.37%) 오른 2483.16에 마감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 [연합뉴스]

미국 물가 정점 통과 기대감 속에 11일 코스피가 80.93포인트(3.37%) 오른 2483.16에 마감했다. 사진은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 [연합뉴스]

종목별로 아마존이 비용 절감을 위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보도 이후 12% 이상 급등했다. 전기차 트럭업체인 리비안은 예상보다 적은 손실, 예약이 늘고 있다는 소식에 17.4% 급등했다. 테슬라(7.39%)·애플(8.9%)·구글의 모회사 알파벳(7.58%)·메타플랫폼스(10.25%) 등 IT 기업들을 비롯해 엔비디아(14.33%)·인텔(8.14%)·퀄컴(9.28%) 등 반도체주도 치솟았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도 10.2% 급등했다.

CPI 발표 직후 국채 금리는 하락(국채 가격 상승)하고, 뉴욕증시 3대지수 선물도 일제히 급등했다. 이처럼 시장에 훈풍이 분 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한 때문이다. 베이커 애셋매니지먼트의 수석 전략가인 킹 립은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다는 주장이 계속 나왔지만 데이터로 나타나지 않아 시장의 실망이 컸다”며 “실제로 물가가 꺾이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 경기가 연착륙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짐 폴슨 로이트홀드그룹 수석투자전략가는 “연준이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시장의 관심이 인플레이션을 넘어 침체를 피할 수 있을까로 옮겨간다는 것”이라며 “아마 연착륙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달 치 물가 지표만으로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당장 연준 관계자들은 과도한 기대감에 선을 긋고 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는 “한 달 치 데이터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고 긍정적인 물가 지표가 여러 번 나와야만 안심할 수 있다”며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금리 인상 속도가 늦춰지더라도 완화적 통화정책이라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리 로건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는 “금융시장과 경제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더 잘 평가하기 위해 조만간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적절하다”면서도 “속도를 늦추는 것이 완화적 정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국내에서는 원화 가치가 오르면서 한국은행이 긴축의 보폭을 줄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한국경제학회와 공동 개최한 국제컨퍼런스 개최사에서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도 제롬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는 “미국 물가의 (상승률) 7%대는 굿(좋은) 뉴스”라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의 물가 안정 흐름이 계속 이어질지와 국내 금융과 경제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본 뒤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결정을 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시장에서는 24일 금통위에서 한은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채권 시장에서는 유동성 경색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보니 한은이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제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빅스텝) 올리며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며 “한국도 이번 금통위에서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