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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된 킹달러] 환율 급변에 ‘신삼국지’…일학개미 뛰고 서·중학개미 주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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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호 11면

SPECIAL REPORT 

일본 도쿄에서 환율 모니터 앞을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엔저 현상으로 11월 달러당 엔화 가치는 140엔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AP=뉴시스]

일본 도쿄에서 환율 모니터 앞을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엔저 현상으로 11월 달러당 엔화 가치는 140엔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AP=뉴시스]

MZ세대 투자자인 김지영(가명·29)씨는 최근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성공한 환테크족이다. 지난해 여름 원·달러 환율이 1160원일 때 달러화를 매수해, 지난달 1427원을 찍을 때 매도했다. 그는 “지난해 달러 자산이 유망하다는 지인 권유에 매수했는데, 실제 달러화 가치가 이렇게 오를 줄은 몰랐다”며 활짝 웃었다.

주부 박모(48)씨는 요즘 틈 날 때마다 엔화 환율을 살피고 있다. 박씨는 “일본 여행을 앞두고 역사상 저점에 있다는 엔화에 관심이 커졌다”며 “언젠가 엔화 가치가 제자리를 찾을 것이고, 저렴하게 일본 여행에도 쓸 수 있어 틈틈이 엔화를 분할매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 속에 투자 ‘신(新)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달러 대비 주요국의 통화 가치가 널뛰면서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달러 가치 상승 속에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가 주류를 이뤘는데, 최근에는 역대급 엔저(엔·달러 환율 상승) 현상을 노린 일학개미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해 온 중국 위안화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과 관련한 ‘차이나 런’(차이나+뱅크런) 리스크와 킹달러 앞에 힘 빠진 모습으로 중학개미들의 근심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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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환시장에선 일학개미의 세력 확장이 도드라진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개인 엔화 환전 매입금액은 103억1782만엔으로 1년 전 14억7562만 엔에 비해 7배나 크게 증가했다. 특히 역대급 엔저 현상이 부각되며 하반기 들어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엔화 환전 금액은 12억1402만 엔 수준이었으나, 6월에는 44억3534만 엔으로 급증한 뒤 10월에는 100억엔을 돌파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기간 달러화의 환전 금액은 2억3243만 달러로 1년 전 1억4612만 달러보다 59% 증가했다. 킹달러에 달러 수요도 크게 늘었지만 엔화의 증가 수요에는 미치지 못한 셈이다. 김해인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미 8월부터 엔화가 역사적 저점 수준으로 시장의 관심을 받았으나 그 사이에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는 더 심화됐다”며 “엔화 약세는 적어도 올해나 길게는 내년 2월까지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달러 자산을 매도해 환차익을 얻고 엔화 자산을 매수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주식과 일본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국 ETF’를 많이 사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6일 기준) 일학개미가 순매수한 종목 5위 안에 3개 종목이 미국 ETF였다. 2위인 ‘닛코 나스닥 100 ETF’(순매수액 약 130억원), 3위인 ‘아이셰어즈 S&P500 ETF’(73억원)와 5위인 ‘아이셰어즈 미국채 20년물’(50억원) 등이다. 이들 상품은 엔·달러 변동성 위험을 환헤지(위험 회피)한 점이 특징이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지난 10월 150엔까지 떨어지면서 32년 만의 기록적 하락을 보였다. 일본 정부가 부랴부랴 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이달에도 140엔대에서 소폭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엔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면서 환차익을 노리는 동시에, 내년 금리 부담을 털고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는 미국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남중 대신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내년 상반기 이후 금리가 안정되면 미국 주식의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에 대한 투자는 급격히 위축된 상태다. 미·중 갈등에 이어 시진핑 3연임으로 인한 정치적 우려까지 불거지며 차이나 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위안화는 올 봄까지만 해도 강세였으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된 후 약세로 전환됐다.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포치(1달러당 7위안)도 깨졌다. 10일 기준 1달러를 바꾸려면 7.24위안이 필요할 정도로 위안화 가치는 추락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투자가의 탈 중국 행렬은 이례적 현상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추세화될 공산이 있다”며 “이는 막연한 정치·외교적 반감이 아닌 잠복 지정학적 리스크의 대응 성격이 짙다”고 했다.

현재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킹달러의 지속 여부다. 10일 원·달러 환율은 사흘 연속 급락하며 달러당 1360원대로 떨어졌다. 지난달 1440원 턱밑까지 갔던 것에 비하면 11월 들어 다소 주춤한 양상이다. 이 같은 환율 하락에 따라, 달러 인버스 ETF 투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1개월간(10일 기준) 달러 하락에 베팅하는 삼성 코덱스 미국달러선물 인버스2X와 타이거 미국달러선물 인버스2X에는 각각 196억, 94억원의 투자금이 유입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 달러화 가치 약세의 지속 가능성을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진단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대신에 더 오래, 더 높이 올릴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다. 웰스파고의 브렌던 맥케나 전략가는 “연준은 매파적인 스탠스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달러 매수 의견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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