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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긴 ‘자루눈파리’ 수명 짧아, 자격 따지면 경쟁력 잃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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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말레이시아에 사는 자루눈파리는 참 독특하게 생겼다. 파리의 일종이지만 우리가 아는 파리와는 상당히 다르다. 특히 눈 모양이 그러한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자루처럼 길고 이 끝에 눈이 달려 있다. 그래서 대눈파리라고도 한다. 〈그림 참조〉 이들은 왜 이런 이상한 눈을 갖게 됐을까?

이들의 눈은 짝짓기를 위한 구애 행동에 열중한 결과다. 우리도 그렇지만 자연의 암수는 짝짓기를 통해 후손을 만드는데, 대체로 수컷들이 암컷에 구애 공세를 펼친다. 알이나 태아를 낳고 키워야 하는 수고를 암컷이 하는 일이 많아 짝짓기에 신중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거나 자유롭고자 하는 수컷들은 어떻게든 자기 유전자를 많이, 그리고 널리 퍼뜨리려 하는 까닭에 치열한 경쟁이 대개 대결로 이어진다. 누가 더 적임자인지 겨루는 것이다.

하지만 대결은 양쪽 모두에게 리스크가 크다. 승자도 상처뿐인 영광일 때가 많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과시 행동이다. 자신이 더 나은 유전자와 경쟁력을 가졌다는 걸 신체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숫사자의 짙은 갈기나 사슴의 커다란 뿔이 좋은 예인데, 수컷 자루눈파리들은 두 눈 간의 거리가 자격 조건이다. 두 눈 사이의 거리가 가장 먼 수컷이 강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아마 이런 눈이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파리의 일종인 자루눈파리의 눈은 짝짓기를 위한 구애 행동에 열중한 결과 자루처럼 길고, 이끝에 눈이 달려 있다. [사진 파벨 키릴로프]

파리의 일종인 자루눈파리의 눈은 짝짓기를 위한 구애 행동에 열중한 결과 자루처럼 길고, 이끝에 눈이 달려 있다. [사진 파벨 키릴로프]

그래서일까.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눈 만들기’를 시작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공기를 삼켜 기포를 만든 후, 눈을 힘껏 밀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긴 막대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눈이 길어진다. 여기서 ‘힘껏’이라고 한 건 어떻게든 최대한 길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후, 짝짓기 철이 오면 밤마다 수컷들끼리 ‘1차 오디션’을 치른다. 자기네들끼리 길이를 대 보고 짧으면 스스로 물러난다.

그러면 이런 테스트를 거쳐 승자가 된 수컷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생의 과업인 짝짓기에는 성공하지만 자루처럼 긴 눈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포식자에게 쉽게 잡히는 등 수명이 짧다. 내부 경쟁력에 치중하다 보니 외부 경쟁력에 약해지는 것이다. 내부와 외부 경쟁력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이 균형점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최고의 내부 경쟁력이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다. 문제는 이런 일이 심화되면 한 개체의 불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종(種) 차원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보이는 자격 조건을 따지는 것인데, 조건에 치우치면 불행을 스스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오래 전,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만나 보니 40살을 갓 넘긴 젊은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40대 최고경영자(CEO)가 드물던 시절이라, 이 회사 역시 능력보다는 본사 출신을 우대하는구나 싶어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근무 연수를 물었다.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대답이 뜻밖이었다. 물어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했느냐고요? 음~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시작했으니까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있다는 걸 알았다. 20년 경력에 능력이 있으면 당연한 건데, 오로지 40대 초반이라는 나이와 본사 출신이라는 것만 봤던 것이다. 군대 갔다 오고 괜찮은 대학을 나와야 하며, 나이까지 갖춰야 하는 우리 사정만 생각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관례화된 조건으로만 그를 평가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라는 구글에서도 말이다. 구글 회장을 지낸 에릭 슈미트가 쓴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한 팀장이 아주 일을 잘하는 직원을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최고 엘리트 프로그램에 보내려고 했는데 규정에 걸렸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이나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사람만 가능했다. 독학으로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다른 일들도 여기저기 뛰면서 배운 이 직원에게 그런 졸업장이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몇몇 경영진이 줄기차게 반대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당사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게 분명한 회사에 다니겠는가? 그 역시 회사를 떠났고, 이제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인스타그램을 공동 창업, 몇 년 후 10억 달러를 받고 지금의 메타(페이스북)에 팔았다. 구글은 ‘굴러 들어온 대박’을 스스로 걷어 찬 것이다. 하등 쓸모없는 자격을 고집하다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격 조건은 좀 더 쉽게 능력을 가늠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능력보다 자격 조건을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개꼬리가 개를 흔들면 안 되듯이.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연말은 인사이동의 계절이다. 일년 중 이때만이라도 인사권자들이 꼭 스스로 물어야 할 게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무엇이 자격인가? 자격 조건을 고집하다 인재를 놓친 적은 없는가? 아니, 인재를 놓친 줄도 모르고 있지는 않은가?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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