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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담은 백·꿈을 품은 신여성…사색에 빠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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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호 19면

초겨울 전시 2제

박서보 화백의 ‘색채 묘법’ 연작. [사진 루이 비통]

박서보 화백의 ‘색채 묘법’ 연작. [사진 루이 비통]

11월 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청담동에 있는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아티카퓌신’ 전시가 열린다. ‘카퓌신’은 사다리꼴 모양의 백 이름으로 1854년 루이 비통의 첫 공방 매장이 있던 파리 뇌브 데 카퓌신 거리에서 따왔다. 루이 비통은 2019년부터 매해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6인과 협업하는 ‘아티카퓌신 컬렉션’을 한정판으로 선보여 왔다.

특히 올해는 한국인 아티스트 최초로 박서보 화백과 협업해 눈길을 끈다. 루이 비통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1970년대 이후 단색화의 기수로 독보적인 화업을 일궈온 박 화백의 대표 연작 ‘묘법’ 중 2016년 작을 아티카퓌신 백에 구현했다.

박서보 화백의 ‘색채 묘법’을 구현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사진 루이 비통]

박서보 화백의 ‘색채 묘법’을 구현한 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백. [사진 루이 비통]

박 화백은 2000년대 이후 ‘색채 묘법’ 연작을 선보여 왔는데, 이는 일정한 간격의 고랑으로 형태를 만들고 풍성한 색감을 강조하면서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해 온 작가의 대표 작업이다. 제작 과정은 이렇다. 두 달 이상 물에 충분히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 위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 굵은 연필로 선을 그어 나간다. 이때 젖은 한지는 농부가 논두렁을 갈 때처럼 좌우로 밀리면서 산과 골의 형태를 이룬다. 박 화백은 물기를 말린 후 스스로 경험한 자연 경관을 담아내기 위해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덧입힘으로써 축적된 시간과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직조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박서보 화백X루이 비통 ‘아티카퓌신 전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선 박서보 화백을 비롯한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6인이 루이 비통과 협업한 ‘아티카퓌신’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사진 루이 비통]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선 박서보 화백을 비롯한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6인이 루이 비통과 협업한 ‘아티카퓌신’ 컬렉션을 볼 수 있다. [사진 루이 비통]

루이 비통은 박 화백 작품의 독특한 색감과 질감, 그리고 촉감을 구현하기 위해 송아지 가죽에 붓질 효과를 낸 후 3D 고무 사출 작업을 정교하게 적용했다. 또한 밝은 레드 및 버건디 색감의 가죽을 엄선, 수작업을 더했다. 백의 안감은 린넨으로 처리하고, 중앙 포켓에는 박 화백의 서명을 프린트했다. 이는 박 화백의 원작 뒷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박 화백은 평소 작품 뒷면에 서명을 하고, 본 작품이 어디서 전시를 했는지 꼼꼼하게 적어둔다. 백 하단에서도 박 화백의 작품을 정교하게 구현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박 화백은 평소 전시를 할 때면 작품을 벽면에 바싹 붙이지 않고, 긴 나사(못)를 이용해 일정한 거리로 띄워둔다. 관람객이 정면의 평면 그림만 보지 않고, 입체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루이 비통은 이 효과를 위해 백 하단에 모노그램 꽃 장식이 들어간 4개의 볼륨감 있는 스터드를 부착해서 바닥에 백을 놓더라도 약간 공중에 띄워진 듯 디자인했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 전시장에는 박 화백의 ‘묘법’ 대형작품 두 점이 함께 전시돼 있는데, 이 역시 벽에 걸지 않고 천장에 줄을 연결해 공중에 띄운 형태로 전시됐다. 덕분에 관람객은 박 화백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서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뒷면까지 감상할 수 있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 전시장 천장은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한국의 동래학춤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것으로 금속 파이프와 유리가 투명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곡선을 그려낸다. 덕분에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박서보 화백이 “붉은 단풍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날 때의 색감”이라고 표현한 두 작품이 걸린 풍경은 찬란한 ‘만추(晩秋)’를 감상케 한다.

한편, 이 전시에선 박 화백 외에도 다니엘 뷔랑, 우고 론디노네, 피터 마리노, 케네디 얀코, 아멜리 베르트랑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 5인이 참여한 협업 작품들을 함께 볼 수 있다.  6인의 아티스트와 협업한 아티카퓌신 컬렉션에는 각각 1부터 200까지 한정판 에디션 숫자가 매겨져 있다.

한영수 사진전 ‘봄바람이 불면’

한영수 사진가가 1956~1963년 촬영한 사진 중 ‘新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한영수 사진가가 1956~1963년 촬영한 사진 중 ‘新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11월 10일부터 2023년 1월 18일까지 서울 삼청동에 있는 백 아트 갤러리에서 한영수 사진전 ‘봄바람이 불면(When The Spring Wind Blows)’이 열린다. 한영수문화재단과 백아트가 공동주최한 이번 전시에선 1956~1963년 촬영한 사진 중 ‘新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30점이 전시됐다.

작가의 딸이자 한영수문화재단을 운영하는 한선정 대표는 “한국전쟁 후 도시는 폐허가 됐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시대를 당차게 살아가는 모던하고 세련된 여성들은 존재했다”며 “아버지의 사진들을 통해 시대의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한영수 사진가가 1956~1963년 촬영한 사진 중 ‘新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한영수 사진가가 1956~1963년 촬영한 사진 중 ‘新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1933년 개성에서 태어난 한영수 작가는 70년~90년대 활동했던 한국 1세대 광고작가다. 유복한 가정환경 덕분에 취미로 카메라를 접했고 외국 서적을 보며 사진을 독학했다.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연구단체 ‘신선회’에서 활동했던 그는 7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광고사진을 찍기 전 서울 명동부터 변두리까지, 부산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을 다니며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가난하지만 즐겁게, 고단하지만 당당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한영수 사진가가 1956~1963년 촬영한 사진 중 ‘新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한영수 사진가가 1956~1963년 촬영한 사진 중 ‘新여성’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들. [사진 한영수문화재단]

LA카운티 미술관(LACMA)의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 버지니아 문은 한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영구소장품으로 컬렉션하면서 평론 글을 통해 “한영수의 사진에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는 또 다른 ‘무의식적 순간’을 발견했다”고 칭송한 바 있다. “까르띠에-브레송은 거리의 모습을 포착하는 ‘캔디드 사진(candid photo·몰래 찍는 사진)’이 추구하는 구도와 방법론의 대가였다. 이런 사진들에서 영향을 받고 오마주한 한영수는 평면적 형태와 입체감,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들에 구조를 부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아마도 그런 순간이 오기를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무한한 인내심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영화 ‘화양연화’의 포스터처럼 다방에서 등지고 비스듬히 앉은 남녀, “택시 합승”을 외치는 소년과 눈이 마주친 우산 속 숙녀, 여러 명의 남성들 사이에 여왕 같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한복 차림의 그녀 등등. 사진가의 의도나 연출은 철저히 배제됐기에 자신의 사진을 찍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말하자면 필름을 한 장 한 장 돌려가며 찍는 그 옛날 똑딱이 카메라로 ‘스냅사진’을 찍은 것인데, 한 작가가 프레임 속에 담은 우연히 마주친 ‘순간’들은 모델과 무대를 계산이라도 한 듯 완벽하고 아름답다.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을 하고, 사람과 거리를 관찰했으면 이렇게 매력적인 ‘찰나’를 잡아낼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한영수의 흑백사진들은 볼 때마다 흥미롭다. ‘사진 속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계속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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