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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4’는 중국 반도체 자립 움직임 반작용이자 균형잡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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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호 22면

『칩 전쟁』 저자 크리스 밀러 교수 인터뷰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미국의 강공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지난달 4일 출간된 크리스 밀러(Chris Miller)의 『칩 전쟁: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위한 싸움(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이다.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국제사 교수이자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프로그램 국장을 맡고 있는 밀러 교수는 국제 문제 전문가인 30대 신진학자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을 비롯해 러시아·투르키예·중국 정치·경제다.

『칩 전쟁』은 출간 전부터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중국 기술의 부상에 대한 이해’란 제목의 기사에서 참고할 만한 관련 도서로 소개하는 등 기대를 모았다. 출간 후엔 파이낸셜타임스가 경제 분야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고,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의 라이언 히스 디렉터는 뉴스레터에서 “올해 읽은 가장 흥미로운 책”이라고 밝혔다. 밀러 교수를 줌(Zoom)으로 만났다. ‘칩4’(한·미·일·대만의 반도체 동맹)의 의미, 그리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한 미국의 시각,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가 중국의 군사적 행동을 막는 ‘실리콘 방패’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칩4, 중국 보조금 축소 압박 과제

국제 문제 전문가인 신진학자 미국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 [사진 조지 마샬]

국제 문제 전문가인 신진학자 미국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 [사진 조지 마샬]

한국에서는 ‘칩4’에 대한 관심이 크다. 중국을 제외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칩4는 하나의 ‘균형잡기’다. 중국은 각국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반도체 자립을 추진했다. 반도체는 현대 군사력의 핵심인 만큼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이를 불편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칩4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이자 균형잡기로 해석할 수 있다. 칩4 국가들이 세부적인 사안에는 의견이 다를 수 있어도, 이 균형잡기의 방향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칩4’에 어떤 효용과 리스크가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우려가 있다.
“칩4는 구속력 있는 조약의 형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무국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칩4는 단지 의사소통을 더욱 원활히 하려는 것일 뿐이다. 이들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지도를 새로 그릴 것이고, 필요하다면 대(對)중 수출 규제를 논의하거나 공동으로 투자를 심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칩4가 특정 구성원에게 강압적으로 의무나 부담을 지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해당 국가가 거부하면 그만이지 않나. 칩4는 ‘동맹’과도 다르다. 명확한 의무와 약속이 따르는 한·미 군사동맹 같은 형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적극적인 정보 공유와 원활한 의사소통, 그리고 협력이 중요한 관계다.”
미국이 동맹국과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프렌드쇼어링(friend- shoring)’이 쇼라는 비판이 있다. 실제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 법안이나 IRA는 동맹국에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동맹국들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 독일 등지도 마찬가지다. 이들 나라는 반도체 산업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객관적인 지표만 놓고 보면 미국만 과도하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수년간 정부 개입 없이 시장에만 맡겨 놓았기 때문에 반도체 글로벌 제조 공정에 있어서 미국의 비중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정책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공정을 확대하려는 세계적인 흐름의 일환일 뿐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동맹국이 문제 삼을 것은 아니라는 얘긴가.
“그런 뜻은 아니고, 모든 나라가 지속적으로 반도체에 자원을 쏟아 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높은 비용도 문제지만 과잉 생산과 시장 왜곡이 더 큰 문제다. 무엇보다 중국이 매년 보조금으로 수백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흔들고 있다. 서방 진영의 그 누구도 중국의 보조금 정책을 철회시킬 전략을 구상해내지 못했다. 한 가지 방안은 트럼프 행정부처럼 중국산 반도체 부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중국이 반도체 공정을 유치하지 못하도록 역(逆)보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칩4의 과제 중 하나는 중국이 보조금을 줄이도록 압박하는 방안을 내놓는 것이 될 것이다. 중국의 대대적인 보조금 정책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만의 문제이기도 하며, 메모리반도체에 관한 한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 정부를 제대로 규제할 수 없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국가들이 나서야 한다. 이들 국가들이 반도체 보조금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할지, 과도한 보조금을 제한할 방법이 있는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상호 신뢰가 쌓여 있는 국가들이 비교 우위를 살려 공급망을 구축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만은 중국이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자 중국의 TSMC에 대한 의존을 군사적 억제력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소위 ‘실리콘 방패’라고 불리는 전략인데, TSMC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려는 미국의 생각과 충돌하는 것 아닌가.
“TSMC에 대한 미국의 기조는 명확하다. 미국의 허가 없이는 화웨이를 위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반도체 공급 자체를 전면 규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TSMC가 생산하는 반도체를 조립하려면 결국 중국으로 가야 한다. 실리콘 방패는 어쩌면 의도된 결과일 수 있다. 전략적으로 위험한 반도체는 중국에 공급하지 않으면서도 TSMC의 중국 사업 상당 부분을 유지시키는 것은 ‘균형 잡기’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실리콘 방패라는 개념에 대해 대만과 미국 관료들 간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실리콘 방패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중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경제’는 뒷전이다. 청년 실업률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도 중국은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다. 경제가 더 이상 중국 정부의 궁극적인 관심사가 아니라면 실리콘 방패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미국과 한국, 대만 등이 실리콘 방패에 안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역 정세를 위협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대만의 안보는 대만뿐만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전체에 막중하다. 미국 정부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만은 자국의 반도체 산업이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이끌어내기를 바란다.
“실제로 대만은 그런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만해협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살펴보자. 대규모 전면전의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가장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평화와 대규모 공격 그 사이 어디쯤일 것이다. 가령 중국이 해상을 봉쇄하거나 일부 섬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의 선택지는 두 가지 정도다. 대만해협의 위기를 고조시켜 세계경제 전체를 휘청이게 하든지, 중국의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대만 반도체의 중요도에 따라 미국의 개입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전면전이라면 모르지만, 저강도 충돌이라면 미국이 개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경제의 대만 의존도가 낮다면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되레 너무 높기 때문에 딜레마가 돼버린 것이다. 대만 사태의 특수성에 따른 아이러니다.”

대만 TSMC, 중국보다 미국과 긴밀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신안보센터(CNAS)가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는 중국이 TSMC를 직접 압박·유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대만 정부와 TSMC 간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만 정부는 그간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했다. 중국이 대만 인재를 고용할 때, 중국 기업이나 정부가 자국 반도체에 투자를 할 때 엄격한 규제를 적용했다. 무엇보다 TSMC는 자체적으로 이미 선명한 입장정리를 했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수출 통제를 처음 발표했을 때 TSMC는 ‘법 자체(letter of the law) 뿐 아니라 법의 정신(spirit of the law)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법적인 의무를 넘어 자발적으로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TSMC는 중국에 주요 고객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고객은 미국에 있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다. 경영진 상당수가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거나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TSMC와 미국 사이의 연결점이 TSMC와 중국 사이의 연결점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파운드리 SMIC 등이 TSMC의 7나노미터 반도체를 모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미국 정부 또한 특정 대만 기업이 중국과 손을 잡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안다.
“TSMC 직원이 중국 회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있었고, 지난 20년간 TSMC와 SMIC 간 지적재산권 소송도 잇달았다. (대부분 TSMC가 승소했다). 대만의 반도체 기술이 중국의 산업을 지원하는 경로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의 목표는 중국의 기술 발전을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다. 가장 발전되고 정교한 기술이 중국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TSMC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제조업체로 남고 싶어 할 것이라 믿는다.”

홍태화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생 c_project@joongang.co.kr 미국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뒤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과정 중이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 한미경제연구소 등에서 연구 조교·인턴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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