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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된 킹달러] 달러 1강 체제 굳히기…준기축통화국 약한 고리 드러나, 파운드·엔·유로 추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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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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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무역·금융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의 파운드화가 1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도로 힘이 빠지면서 국제통화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파운드화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없었던 만큼 글로벌 무역시장에서는 또 다시 금이나 은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인 유럽을 대상으로 군수물자를 공급하며 막대한 금을 축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달러의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44년 44개국 지도자들은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이튼우즈에 모여 ‘통화정책 조정을 위한 국가 간 협약’(브레이튼우즈 협정)에 서명했다.

이후 금 1온스는 35달러로 고정됐고, 미국의 달러가 금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통화 지위를 얻게 됐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 보유량의 80% 정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44개 국가는 미국의 지급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정치·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차지했다. 금을 앞세워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달러는 단지 무거운 금을 대신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전후(戰後) 재건에 나선 국가들이 급속히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달러의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미국은 달러를 쉬지 않고 찍어내며 가치 하락을 부추겼고,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달러-금 태환 중단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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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기준금리 급격 인상에 달러 값 급등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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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파운드화처럼 달러가 한순간에 국제통화 시장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전후 재건 이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영국과 유럽 국가들, 일본 등이 세계 무역·금융시장에서 미국이 갖고 있던 힘을 나눠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미국 ‘1강’ 체제였다면 그 이후에는 ‘1강 3중’, 혹은 ‘2강 2중’으로 통화를 앞세운 글로벌 패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킹(King)달러. 요즘 달러 가치 상승세를 두고 흔히 쓰는 표현인데, 실제로 미국이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달러 몸값은 큰 폭으로 뛰었다. 준기축통화인 유럽연합(EU)의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코로나, 스위스 프랑에 대한 달러 가치를 각국의 무역 비중을 고려해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 들어 가파르게 올랐다. 11일(현지시간) 110선 아래로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7.7%로 2월 수준(7.9%)으로 둔화했는데, 2월 달러인덱스는 100을 하회했다. 상승률만 보면 달러보다 더 큰 폭으로 뛴 통화가 없지 않아 ‘1강’을 근거로 한 ‘킹’이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통화 가운데는 단연 ‘1강’이다. 달러와 함께 세계 무역·금융시장을 분할하고 있던 엔·파운드·유로화 가치는 올 들어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원화 역시 반등에 성공했으나 여전히 1300원대에 머물고 있다.

킹달러의 시작은 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부지런히 올리면서 시작됐다. 10월 말 현재 각국의 기준금리는 미국이 4%(상단 기준), 일본 -0.1%, EU 1.25%, 영국 2.25%다. ‘이자율 평가설’(환율은 나라 간 이자율 차이에 의해 결정)로 보면 지금의 킹달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는 수치다. 과거에도 이런 모습이 있었다. 1979년 8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가 취임과 동시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50bp)씩 올려 취임 전 10.5%이던 기준금리를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1981년 하반기부터 물가가 안정되며 연준의 긴축 기조가 누그러지긴 했지만, 달러인덱스는 1979년 80에서 1985년 160으로 6년간 곱절이 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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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의 킹달러 이면에는 이자율 평가 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주요 통화의 통화량과 그들 나라의 경제성장률·무역수지, 외국인투자자금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지금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보는 시각은 대체로 통화 공급의 급팽창과 재화·서비스의 공급망 혼란 같은 수요 측면의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독일을 필두로 하는 탈(脫)석탄과 원전 배제, 재생에너지 육성은 에너지발(發) 인플레이션에는 취약이다. 에너지 재고가 가장 낮은 시기를 틈타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 청구서’로 돌아와 유럽의 물가를 천정부지로 몰고 갔다.

G4 국가(미국·EU·일본·영국)의 광의통화(M2)량은 코로나19 때 급증했다. G4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M2 비중은 2019년 말 45조2000억 달러에서 2021년 말 55조7000억 달러로 10조5000억 달러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수년간의 양적완화를 종식시키면서 금리를 계속 인상하고, 양적긴축을 단행해 인플레이션을 낮춰야 했다. 그런데 미국에 반해 영국·일본·EU 등지는 발을 늦게 뗐다. 더구나 인플레이션의 질도 다르다. 미국은 주거비와 서비스 요금이 문제인 반면 영국·EU는 식품과 에너지가 문제다. 주거비 문제는 금리 인상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에너지는 공급 측면의 문제여서 러·우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이상 통화정책만으로 제압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물가상승률을 목표치로 되돌리는 데 빠른 진전이 예상되는 반면 EU·영국 등지는 당분간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속 하향하고 있으나 영국·일본·EU는 상승 추세이다. EU·영국의 CPI는 미국보다 높으며, 추세적으로 EU·영국은 내년 CPI 전망이 미국보다 더욱 좋지 않다. 지금의 킹달러는 아니더라도 강(强)달러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준기축통화국들이 미국을 따라 발 빠르게 금리를 올리지 못한 데는 저마다의 경제 사정이 있다. 일본의 경우 자동차산업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실정이다. 제조 강국 일본에서 자동차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마지막 보루다. 일본 전체 취업 인구의 8.2%, 수출의 20.5%를 자동차산업이 담당한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30년 뒤면 일본의 자동차 시장이 반토막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즈호은행이 올해 4월 펴낸 ‘2050년의 일본 산업을 생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430만대였던 일본의 신차 판매대수는 2050년 225만~275만대로 36~48%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화의 가속과 재택근무로 인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골자다.

유럽, 우크라 전쟁 끝나야 물가 잡힐 듯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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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시장이 그러한데, 해외 시장이라고 다를까. 수술을 통해 현재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이 일본경제에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일본경제가 과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은 어떤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경제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파운드화의 약세는 사실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확정된 2016년부터 시작됐는데, 이를 헤쳐 나갈 정부 정책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국가 부채가 문제다. 정부가 보조금을 퍼붓기 시작하면서 부채가 급증했고, 영국 예산책임국(OBR)은 장기적으로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0%까지 불어날 거라고 예상한다. 이 때문에 영국 국채 금리는 한때 이탈리아·그리스와 같은 ‘부채 과다’ 국가보다 웃돌기도 했다. 이는 금융시장에서 영국의 국가부도 위험을 이탈리아·그리스보다 더 높다고 본 것으로, 그만큼 영국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단편적인 예는 또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했던 리보(LIBOR·런던은행 간 금리)가 내년 7월 사라진다. 리보는 한때 전 세계 금융거래의 기준 지표 역할을 했다. 금융산업이 발달한 영국이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리보가 사라지는 건 영국이 더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EU의 경제 상황도 마찬가지다. EU 경제의 부흥은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에 성공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최근 러·우 전쟁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유럽인의 삶과 일자리 그리고 산업 경쟁력이 걸린 문제이고, 선도국 역할을 하고자 하는 EU의 대외 이미지가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 계획이 러·우 전쟁으로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들 나라와 달리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충격 이후 크게 반등하며 경제대국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애플·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로 대변되는, 경기 민감도가 낮고 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대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중심의 정보기술(IT)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한 덕분이다. 최근에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이라는 기치 아래 제조업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항공모함 갑판부터 고속도로 가드레일용 철강까지 모두 미국산을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다짐은 ‘칩과 과학법’(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산 철강만을 쓰도록 한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법’ 가이드라인까지 포함하면 인프라·전기차·반도체에서 미국산을 강조한 연두교서(Annual Message)를 착착 실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영국·일본·EU의 경제·정치적 상황이 코로나19 등을 거치면서 사뭇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것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만나 지금의 킹달러를 만든 것이다. 이 같은 달러 ‘1강’ 체제는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EU는 전반적으로 재정이 취약하고 상이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의 연합으로, 재정·경제·군사 면에서 미국에 한참 못 미친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그동안 자유롭게 통화를 찍어내 그 후유증이 크고 통화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

달러 대체할 적당한 통화 아직 안 보여

엔화의 경우는 일본경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엔화는 이제 일본인을 제외한 외국인들은 국제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추세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정부 부채로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과도한 부채와 낮은 이자율을 넘어 중간 수준의 세계경제 강국에 불과하고 군사력도 약한 편이다. 파운드화 역시 경제의 펀드멘털이 약하고 정치가 시대에 뒤쳐진 신뢰를 저해하는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파운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76년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도 대두되면서 영국과 파운드의 위상은 곤두박질쳤다. 파운드화가 신뢰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킹달러로 대변되는 강달러도 영원히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달러인덱스나 주요국의 통화가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다. 최근 달러인덱스가 하락하고, 원화 가치가 상승(환율 하락)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지속되었을 때나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경기 침체가 지속되었을 때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지위가 흔들리기도 했다. 그 결과 IMF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글로벌 각국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의 비중은 최대였던 73%에서 최근 58% 수준까지 줄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미국이 의도를 했든 안 했든,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인플레이션 속 새로운 화폐전쟁에서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의 빈자리를 중국 위안화를 중심으로 한국 원화,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 등이 차지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달러를 대체할 적당할 통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달러와 경쟁할 만한 매력적인 기축통화가 없는 상황에서 강달러 현상이 약화한다고 해도 달러의 위상은 크게 흔들릴 것 같지 않다. 세계 무역·금융시장이 달러 ‘1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 울산과학기술원 특임교수. 연세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금융을 공부한 뒤 행시(34회)로 공직에 진출했고 OECD대한민국정책센터 조세센터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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