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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웨이브’ 잠재운 ‘Z 웨이브’…낙태권이 표심 움직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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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호 06면

미 중간선거 민주당 선전 배경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존 페터만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자 청년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존 페터만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자 청년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Z세대가 민주당을 구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 밖으로 선전한 데는 Z세대(1997년 이후 출생) 유권자들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낙태권과 기후변화, 학자금 대출 탕감책 등 젊은 층 유권자들을 겨냥한 민주당의 어젠다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Z 웨이브’가 당초 이번 선거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됐던 ‘레드 웨이브(공화당 압승)’를 차단하는 데 일등공신이 된 셈이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을 지지한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18~29세였다. 에디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하원의원 투표에서 18~29세 유권자의 63%가 민주당을, 35%가 공화당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과 라틴계의 경우 민주당 하원 후보에 투표했다는 응답이 89%와 68%에 달했다. 반면 45~64세는 공화당에 투표한 비율이 54%로 민주당(44%)보다 높아 대조를 이뤘다.

이와 관련, 미 터프츠대 정보연구센터 ‘서클’은 특히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린 경합주에서 ‘Z 표심’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최대 격전지로 꼽힌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 출구조사 결과 18~29세 유권자가 민주·공화당에 투표한 비율은 각각 70%와 28%였다. 반면 45세 이상 유권자들은 민주당보다 공화당에 투표한 비율이 높았다. 개표 결과 존 페터만 민주당 후보가 메메트 오즈 공화당 후보에 4.2%포인트 앞서며 승리를 거뒀다. 이 같은 경향은 위스콘신주 주지사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 소속인 토니 에버스 현 주지사에 대한 18~29세 유권자 지지율은 70%에 달했다. 결국 에버스 주지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개 지지를 받은 팀 미셸스 공화당 후보에 3.4%포인트 앞서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서클은 출구조사 등을 토대로 이번 선거의 18~29세 투표율을 27%로 추정했다. 이는 2018년 중간선거 때 투표율(36%)에 이어 최근 30년 동안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서클 측은 “특히 펜실베이니아주와 위스콘신주 등 경합주에서는 18~29세 투표율이 30%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치연구소의 여론조사 책임자인 존 델라 볼프도 “30세 미만 유권자들이 아니었다면 ‘레드 웨이브’가 크게 일어났을 것”이라며 “Z세대는 선거가 자신들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투표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Z세대 중 특히 여성 표심이 낙태권 이슈와 맞물리면서 승패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ABC·NBC 등의 출구조사 결과 이번 선거의 최우선 이슈로 전체 유권자의 32%는 인플레이션을, 27%는 낙태를 꼽았다. 반면 18~29세 유권자는 최우선 이슈가 낙태(44%)라고 답했다. 성별 출구조사 결과도 여성이 민주당에 투표한 비율은 53%로 공화당(45%)보다 높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낙태권 이슈와 여성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민주당 선전의 이유로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하워드 극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위원회 연설에서 “낙태권 박탈을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 내에서 여성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젠 그들도 현실을 정확히 알게 됐을 것”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면서 “공화당이 낙태를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낙태권이 유권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는 게 선거 결과로 입증됐다”고 전했다. 지난 6월 미 연방대법원이 헌법상 낙태권을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 무효를 결정한 이후 공화당 성향의 주에서는 낙태권 폐지 정책을, 민주당이 우세한 주에서는 옹호 정책을 각각 추진하며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여왔는데 이번 선거에서 Z세대가 민주당 손을 들어준 게 향후 입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학자금 대출 탕감책과 기후변화 이슈가 Z세대 표심이 민주당 쪽으로 기우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18~34세 유권자 중 59%가 바이든 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국민 지지율(48%)보다 11%포인트 높은 수치였다. 젊은 세대를 위한 보수 성향의 환경단체 관계자는 “공화당이 앞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는 더욱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버드대 정치연구소는 “오늘날 Z세대 투표율은 밀레니얼 세대나 X세대, 베이비붐 세대의 젊은 시절 투표율보다도 높다”며 “Z세대는 지역·인종·배경·성별 등과 무관하게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는 사실을 선출직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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