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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웨이브 누른 Z 웨이브 거셌다..."낙태권·대출탕감책 영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Z세대가 민주당을 구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예상 밖 선전엔 Z세대(1997년 이후 출생) 유권자의 역할이 컸다는 진단이 미 기관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10일(현지시간) 나왔다. 낙태권과 기후변화, 학자금 대출 탕감책 등 젊은 유권자들을 겨냥한 민주당의 어젠다가 주효했단 분석이다. 'Z 웨이브'가 '레드 웨이브'(공화당 압승)를 차단한 셈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지난 9월 23일 기후변화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젊은이들이 지난 9월 23일 기후변화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Z세대 민주당 높은 지지...바이든 "여성의 힘"     

지난 8일 선거일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을 지지한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18~29세였다. 에디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 하원의원 투표에서 18~29세 유권자의 63%가 민주당을, 35%가 공화당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과 라틴계의 경우 민주당 하원 후보에 투표했다는 응답이 각각 89%, 68%에 달했다. 반면 45~64세는 공화당을 지지한 비율이 54%로 민주당 44%보다 높았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2018년 중간선거에선 18~29세의 67%가 민주당에, 32%가 공화당에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낙태권 이슈와 맞물려 'Z세대 여성 표심'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ABC·NBC 등의 출구조사 결과 이번 선거의 최우선 이슈로 전체 유권자의 32%가 인플레이션을, 27%가 낙태를 꼽았다. 그러나 18~29세 유권자는 최우선 이슈가 낙태(44%)라고 답했다. 또 성별 출구조사를 보면 여성이 민주당을 지지한 비율은 53%로, 공화당(45%)보다 높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역시 이날 낙태권 이슈와 여성의 투표 참여를 민주당 선전의 이유로 들었다. 그는 10일 워싱턴DC 하워드 극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위원회 연설에서 "낙태권 박탈을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에서 여성의 힘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이 (여성의 힘을) 알게 됐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또 "공화당이 낙태를 전국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약속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낙태권이 유권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는 것이 (선거 결과로) 입증됐다"고 전했다. 지난 6월 미 연방대법원이 헌법상 낙태권을 보장한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 무효를 결정한 이후 공화당 성향의 주들은 낙태권 폐지 정책을, 민주당 성향의 주들은 낙태권 옹호 정책을 추진하며 분열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격전지, Z세대 민주당 지지율은  

미 터프츠대 정보연구센터 '서클'은 특히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린 경합주에서 'Z 표심'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최대 격전지로 꼽힌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선거 출구조사 결과 18~29세 유권자의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율은 각각 70%, 28%였다. 반면 45세 이상 유권자들은 민주당보다 공화당 지지율이 높았다. 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존 페터만이 공화당의 메메트 오즈를 4.2%포인트 앞서 승리한 것으로 나왔다.

이런 경향은 위스콘신주 주지사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 소속 현역 주지사 토니 에버스에 대한 18~29세 유권자의 지지율은 70%에 달했다. 에버스 주지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개 지지를 받은 공화당 팀 미셸스 후보를 3.4%포인트 앞서 재선에 성공했다.

10일 '서클'은 출구조사 등을 토대로 이번 중간선거에서 18~29세의 투표율을 27%로 추정했다. 이 투표율 추정치는 이 연령대의 2018년 중간선거 투표율(36%)보다 낮지만, 2014년 중간선거 투표율(20%)보다 높다. 18~29세의 이번 중간선거 투표율이 최근 30년 동안 역대 두 번째로 높을 것이란 게 센터의 관측이다.

서클 측은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주 등 경합주에선 이 연령대의 투표율이 31%일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낙태권 폐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국의 젊은이. AFP=연합뉴스

낙태권 폐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국의 젊은이. AFP=연합뉴스

'Z표심', 낙태·기후변화도 중요 

Z세대는 선거가 자신들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생각에 투표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는 분석이다. 미 하버드 케네디스쿨 정치연구소의 존 델라 볼프는 "30세 미만 유권자들이 아니었다면, '레드 웨이브'가 일었을 것"이라며 낙태권·기후변화, 학자금 대출 탕감책이 민주당의 투표율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개한 여론조사(유권자 1500명 대상, 지난 10월 22~26일)에서 18~34세 유권자 59%가 바이든 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정책에 대한 전체 국민 지지율 48%보다 높았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은 '인플레이션 해결'을 전면에 내세웠다. 선거 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경제와 인플레이션이 낙태·기후변화보다 중요한 이슈로 꼽혔다. 그러나 Z세대는 기후변화도 인플레이션 못지 않게 중요한 이슈로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젊은 세대를 위한 보수 성향의 환경단체 관계자 역시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기후변화에 대한 계획이 없다면,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량 제한에 부정적이다.

정치연구소는 "오늘날 Z세대의 투표율은 밀레니얼세대, X세대, 베이비붐세대의 젊은 시절 투표율보다 높다"고 진단했다. 2020년 대선에서도 18~29세 투표율은 53%를 기록해 2016년 대선보다 9%포인트 높았다.

정치연구소의 세티 워렌은 "Z세대는 지역·인종·배경·성별과 무관하게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며 "선출직 정치인들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했다. Z세대가 미 선거의 핵심 유권자로 떠오르면서 'Z 표심'을 겨냥한 정책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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