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크라에 포탄 비밀 지원?···소문 시작은 4월 美의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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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가 155㎜ 포탄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지난 2월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155㎜ 포탄 재고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6년 쌍룡훈련에 참가한 미국 해병대원들이 M777A2 155㎜ 곡사포를 쏘고 있다. 사진 미 해병대

지난 2016년 쌍룡훈련에 참가한 미국 해병대원들이 M777A2 155㎜ 곡사포를 쏘고 있다. 사진 미 해병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포탄 등 각종 전쟁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수출이 성사되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우회 지원하는 모양새가 된다. 정부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방독면 등 비살상 군수품과 의약품만 지원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수출 협상에 따른 러시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155㎜ 곡사포 포탄 10만발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것”이라며 “10만 발은 몇 주 동안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보도했다.

또 신문은 “이종섭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이달 초 만나 무기 거래 원칙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국방부는 “미국 내 부족해진 155㎜ 탄약 재고량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과 우리 업체 간 탄약 수출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11일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을 최종사용자로 한다는 전제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해병대가 155mm 곡사포를 발사하는 장면. 사진은 지난 달 13일 필리핀 북부 지역에서 훈련 중 촬영됐다. AP=연합뉴스

미국 해병대가 155mm 곡사포를 발사하는 장면. 사진은 지난 달 13일 필리핀 북부 지역에서 훈련 중 촬영됐다. AP=연합뉴스

즉 대미 포탄 수출은 시인하면서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설은 부인한 셈이다. 단,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원래부터 갖고있던 탄을 제3국에 제공하는 것을 관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무기 판매 시 수출통제 목적 때문에 최종사용자를 반드시 계약서에 명기하게 돼 있다”며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알리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하는 상황을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군 소식통은 협상 시기와 관련해 "이번 SCM을 계기로 한 것은 아니다"며 "이미 1~2개월 전부터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수출 협상 업체로는 풍산이 지목된다. 지난 5월엔 풍산이 캐나다에 155㎜ 포탄 10만발을 수출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요청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최종 결렬됐다"고 말했다.

미국, 법까지 만들고 강공책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 무기 지원을 본격적으로 요청한 것은 지난 4월 말부터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 4월 25일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주제로 동맹국 등 우방 43개국 국방 고위관계자들과 화상 회의를 주재했다. 한국에선 당시 김만기 국방정책실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한 소식통은 “당시 미국 측이 회의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곤란하다면 미국이 중간에서 나서겠다고 제안했다”며 “사실상 미국이 무기를 대신 받아서 우크라이나에 공여하겠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28일 우크라이나군이 카르키프 지역에서 미국이 지원한 M777 155mm 곡사포를 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7월 28일 우크라이나군이 카르키프 지역에서 미국이 지원한 M777 155mm 곡사포를 쏘고 있다. EPA=연합뉴스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같은 미국 측 방안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사실 미국도 이즈음부터 우크라이나 지원책을 공세적으로 펴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외국에 무기를 지원할 때 별도의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무기 대여법(Lend-Lease Act)’에 서명했다. 무기대여법이 제정되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1년 이후 81년 만이었다.

이같은 법안이 나오면서 전쟁 이후 영국 주도의 무기 지원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됐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도 무기 지원 등 협력을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토 등 무기 요청 많아질 듯 

실제로 미군의 포탄 재고량은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와 관련, 주한미군사령부는 “주한미군 보유 무기를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무기 지원으로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철통 같은 방어 약속을 실행하는 작전 능력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밝히기도 했다.

비단 미국뿐 아니다. 전쟁 장기화로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의 한국 무기 수출 요청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살상 지원 원칙은 한번 정한 것이니 계속 지킬 필요가 있다”며 “다만 예상보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서방의 전시 물자 지원도 한계를 보인다. 한국이 최종사용자를 명확히 하는 방식으로 수출한다면 명분을 살리면서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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