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죽어가는데 보고 늦은 경찰…"육하원칙 안 지키면 혼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지난 9일 해밀톤호텔과 대표 A씨의 주거지 등 3곳에 수사관 14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뉴스1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지난 9일 해밀톤호텔과 대표 A씨의 주거지 등 3곳에 수사관 14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뉴스1

 경찰이 ‘이태원 참사’ 당시 허점을 드러낸 보고·지휘 체계 개선에 나선다. 경찰 내부에서도 경직된 보고 체계와 조직 문화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보고 체계 쇄신하겠다는 경찰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청은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해당 TF에는 이번 참사에서 법적 공백을 드러낸 주최자 없는 자발적 다중운집 상황 등을 점검하는 인파관리 개선팀 외에 상황관리·보고체계 쇄신팀과 조직문화 혁신·업무역량 강화팀 등이 포함됐다. TF 관계자는 “현장 상황이 지휘관까지 신속·정확하게 보고될 수 있도록 보고 체계를 전면 쇄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112 신고 출동과 대응 전반에 이르는 문제점을 분석해 현장 대응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경찰 내부에선 보고 체계 전면 수정을 위해 시스템 개편뿐만 아니라 경직된 조직 문화를 먼저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감을 얻고 있다. 지난 4일 윤희근 경찰청장 등이 참석했던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 회의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화상으로 회의에 참여했던 한 지방경찰청장은 “경찰서 단위에서 시·도청으로 보고되는 라인 등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보고 체계가 개선되려면 지휘관이 자유롭게 보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 등의 지휘부 늑장 보고 사태를 지적하며 나온 발언이었다고 한다. 참사가 있던 지난달 29일 윤희근 청장은 지난달 30일 0시 14분에, 김광호 서울청장은 당일 밤 11시 36분 전화 보고를 통해 사고 발생 사실을 알았다. 경찰 수뇌부가 윤석열 대통령(당일 밤 11시 01분)보다 각각 1시간 13분, 35분 늦게 참사 발생을 인지한 것이다.

치안·안전 상황을 총괄하는 112상황실 근무자들은 보고할 때 거리낌 없이 상관에게 직보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경찰 관계자(경위)는 “경찰 조직은 철저한 계급 사회”라며 “상급자에게 유연하게 보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12상황실 간부인 한 경찰(경정)은 “현 보고 체계는 육하원칙을 완벽하게 담을 것을 실무자에게 요구하고 그렇지 못하면 상부의 타박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간부뿐만 아니라 말단 순경이라도 두서없이 사람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청장에게 직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 “지휘부가 먼저 바뀌어야”

윤희근 경찰청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파관리(Crowd Management) 대책 TF’ 1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희근 경찰청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인파관리(Crowd Management) 대책 TF’ 1차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일부 시·도청은 보고 체계 강화를 위해 ‘삼중 보고 체계’를 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중 보고란 112상황실뿐 아니라 담당 부서와 관할 경찰서장이 각각 청장에게 관내 사건·사고를 직보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해당 청 관내에서 일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완벽성을 갖추지 않아도 무조건 첫 보고가 중요하다는 문화가 자리 잡아 각 기능이 경쟁적으로 청장 직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중 보고 체계 시스템은 지휘부가 겹치는 보고를 토대로 사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찰 안팎에선 현장 직보가 유연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휘부가 먼저 나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112상황실에서 일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재난문자처럼 ‘1보(첫 보고)’ 후 ‘추보(추가 보고)’하는데 상관이 이를 타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청장(전 치안정감)을 역임한 A씨는 “관내에서 아무리 작은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서장이 청장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지휘부가 나서 이들과 소통하는 등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대 출신인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는 보고 체계가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안 움직인 것”이라며 “형식적인 훈련을 벗어나 실제와 같은 연습을 많이 해 경찰 조직이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훈 동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고 체계가 잘못돼서 그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고 흐트러져있던 지휘부에 대한 문제도 분명 발견됐다”며 “안일하게 대응하는 조직 문화 개선 등을 통해 이번 혁신이 보여주기식에 그쳐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TF 관계자는 “현장 상황이 지휘관까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도록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현장 보고가 바로 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TF에선 공직 사회가 가진 조직 문화를 벗어나 직무 중심의 조직 문화로 탈바꿈하는 방안도 함께 의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