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모금액만 2747억…트럼프 눈엣가시 된 '리틀 트럼프'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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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리틀 트럼프에서 트럼프 대항마로.  

8일(현지시간) 미국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공화당 거물 정치인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까지 부상한 론 디샌티스(44) 플로리다 주지사를 이르는 말이다. 그는 정치 입문 10년 만에 '작은 트럼프' 꼬리표를 떼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기 대권을 경쟁하는 반열에 오르게 됐다.

디샌티스는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 59.4%로 민주당 찰리 크리스트 후보를 19.5%포인트 차로 여유있게 따돌렸다. 총 36곳에서 치러진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소 밀렸다는 점에서 더 돋보인 결과다. 뉴욕타임스(NYT)는 "4년 전 3만2463표(0.4%포인트) 차이로 신승했지만, 이번엔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했다. AP통신도 "(이번 재선으로) 한 때 최고 격전지였던 플로리다 주에서 공화당의 권력 장악을 공고히 했다"고 했다.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디샌티스. 뒤는 아내 케이시. AP=연합뉴스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디샌티스. 뒤는 아내 케이시. AP=연합뉴스

당선 확정 후 탬파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서 그의 지지자 수천 명이 "2년 더"를 외쳤다. 주지사는 2년만 하고 2024년 대선에 나서라는 요구라고 외신은 전했다. 폴리티코는 "이날 파티는 대선 출마 '미리 보기(preview)'에 가까웠다"고 했다.

트럼프 키즈, 견제받는 잠룡 되다

디샌티스는 아직 출마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그를 공화당 대선 유력후보로 꼽으며 출마 군불을 지피고 있다. 9일 워싱턴포스트(WP)는 칼럼에서 "공화당 차기 대선 경선은 디샌티스의 승리로 시작됐다"고 했다. 공화당 원로인 뉴트 깅그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은 9일 폭스뉴스에 "디샌티스가 (개표가 이뤄진) 지난 밤의 가장 큰 승리자"라면서 "트럼프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기를 원하는 공화당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 것"이라 했다.

트럼프의 우군이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도 디샌티스로 갈아타는 분위기다. 머독 소유의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9일자 아침 1면에 디샌티스와 가족사진을 전면에 싣고 '드퓨처'(DeFUTURE·디샌티스가 미래라는 뜻)라고 제목을 달았다.

9일 뉴욕포스트 1면은 디샌티스와 그의 가족 사진으로 도배됐다. 사진 뉴욕포스트 트위터 캡처

9일 뉴욕포스트 1면은 디샌티스와 그의 가족 사진으로 도배됐다. 사진 뉴욕포스트 트위터 캡처

재계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공화당 정치 자금을 지원하는 헤지펀드 시타델의 켄 그리핀 최고경영자(CEO)가 6일 그를 공개 지지했다. 앞서 그리핀은 그에게 500만 달러(68억원)를 후원해 최대 금액을 기록했다. 디샌티스가 이번 경선을 위해 모금한 돈은 총 2억 달러(2747억원)다. NYT는 "대선 출마의 시드머니가 될만한 큰 금액"이라고 전했다.

시타델의 켄 그리핀 최고경영자(사진)가 디샌티스를 공개지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타델의 켄 그리핀 최고경영자(사진)가 디샌티스를 공개지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누구에게 차기 대선에서 표를 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디샌티스"라고 답했다.

이번 중간선거를 자신의 대선 발판으로 삼으려던 트럼프 입장에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디샌티스가 눈엣가시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기간 그의 이름에 '신성한 척하다'는 형용사인 'sanctimonious'를 합성해 "디생크터모니어스(DeSanctimonious)"라고 비꼬았다. 또 "그가 출마하면 크게 다칠 것"이라며 견제구도 날렸지만 되레 위상만 높여준 꼴이 됐다.

그가 급부상한 이유는 뭘까. 

외신들은 그가 트럼프처럼 보수적이지만 덜 선동적이고 덜 극단적이라는 점, 확실한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트럼프의 선동에 거부감을 가진 일부 공화당 멤버들은 그를 대안으로 꼽는다. 더그 헤이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대변인은 BBC에 "그는 확실히 트럼프식 전술을 쓰지만 이면에는 정책 목표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외신은 "실체를 가진 트럼프 2.0(BBC)", "두뇌는 있고 드라마틱함은 없는 트럼프(파이낸셜타임스)"라고 평가했다.

당내 지지율도 상당하다. 최근 NYT 조사에서 공화당 예비선거 유권자 중 트럼프 지지는 47%, 디샌티스는 28%로 나타났다. NYT는 "지난해만 해도 그의 지지율은 19%였다"고 전했다.

2020년 4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코로나 19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디샌티스.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4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코로나 19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는 디샌티스. 로이터=연합뉴스

디샌티스는 그간 국경 안보, 성 소수자 문제 등에서 강경 보수 정책을 펼쳐 왔다.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선 경제를 강조해 방역 조치를 느슨하게 했다. "백신 접종은 개인 자유의 영역"이라고 주장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해 바이든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지난 9월에는 불법 이민자 옹호를 강조해온 매사추세츠주에 불법 이민자를 태운 비행기 2대를 보냈다. AP통신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이민 친화적인 도시들을 조롱하는 조치"라고 전했다.

지난 3월 디샌티스는 '동성애 언급 금지(Don't say gay·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성 정체성 교육 금지)'법을 플로리다주에서 시행하면서 다양성을 지지하는 기업 디즈니와 마찰을 빚었다.

4월 16일 미키 마우스 복장을 한 사람이 '플로리다를 자유롭게'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월 16일 미키 마우스 복장을 한 사람이 '플로리다를 자유롭게'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시 동성애 언급 금지법을 디즈니가 반대하고 나서자, 디즈니가 누려온 세금 혜택을 박탈하는 등 초강수를 뒀다. 외신은 "그는 디즈니와 '문화전쟁'을 벌여 보수주의를 수호하는 영웅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해군 장교 복무…2018년 "벽 쌓아라" 구호로 주지사 당선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족의 후손으로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태어난 그는 TV 시청률 계산을 위한 장비 설치기사였던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예일대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이라크에 파견돼 미 해군 법률 고문으로 일했다. 그 뒤 변호사로 일하다가 2012년 플로리다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했다.

2010년 케이시와의 결혼식.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2010년 케이시와의 결혼식.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2016년 상원 진출을 노렸으나, 공화당의 대권 후보로 꼽혔던 마코 루비오에게 양보했다. 그 뒤 트럼프의 지지를 업고 2018년 주지사가 됐다. 당시 그는 트럼프 캠프의 구호를 그대로 따서 자기 선거에 활용했다.

트럼프가 한 유명한 말인 "벽을 쌓아라"를 2018년 자신의 선거 광고영상에 사용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트럼프가 한 유명한 말인 "벽을 쌓아라"를 2018년 자신의 선거 광고영상에 사용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2018년 캠페인 영상에서 그는 블록 놀이를 하는 딸에게 "벽을 쌓아라"고 말했다. 불법 이민을 차단하는 트럼프식 장벽을 환기시키는 말이다. 이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팻말 읽는 법을 가르친다. 아들에겐 트럼프의 책을 읽어주며 "너는 해고야!"라는 리얼리티쇼 속 트럼프의 유명한 대사를 언급한다. 뉴요커는 광고 컨설턴트인 케빈 케이트를 인용해 "플로리다 역사상 가장 멍청하지만 효과적이었던 30초 광고"라고 전했다.

TV 뉴스 리포터 출신인 케이시 블랙과 2010년 결혼해 세 자녀(아들 1명, 딸 2명)를 뒀다. 뉴요커는 아내와 자녀들이 "마치 유세 홍보물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묘사했다.

11월 8일 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론 디샌티스(왼쪽)가 가족들과 함께 지지자들 앞에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1월 8일 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론 디샌티스(왼쪽)가 가족들과 함께 지지자들 앞에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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