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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예의 직격인터뷰

“이런 일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생각부터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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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이태원 참사 본 일본 안전 전문가 가와구치 교수의 일침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검은색 테이프로 바닥에 그려진 1㎡의 공간. 그 앞에 선 교수가 말을 토해낸다. “어른 어깨 넓이가 50㎝ 된다고 보고요, 가슴팍 두께가 보통 20㎝라고 가정을 해도, 이 공간에 16명이 서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지난 8일 일본 오사카(大阪) 다카쓰키(高槻)시 간사이(関西)대학에서 가와구치 도시히로(川口寿裕·56)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곤 실험실 바닥에 테이프로 1㎡ 표시를 해뒀다고 했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서 군집안전(群集安全) 연구를 해왔던 것인데,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희생돼 연구자로서 뼈아프다”고 했다. 그는 156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사고의 원인을 “준비 부족”이라고 잘라말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은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라고도 했다.

정치 문제 아닌 준비 부족과 시스템 만들기의 문제
일본은 아카시시 불꽃놀이 사건 계기 군중밀집 사고 연구
경찰, DJ처럼 인파 통솔…경찰 홈피엔 ‘혼잡경비안내서’ 게재
젊은이들 다수 희생…군중사고의 무서움 잊지 말아야

밀집 상황이 이뤄지면 얼마만큼의 하중이 인체에 전달되는지를 실제로 실험하는 장치 앞에서 지난 8일 가와구치 교수가 이태원 사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밀집 상황이 이뤄지면 얼마만큼의 하중이 인체에 전달되는지를 실제로 실험하는 장치 앞에서 지난 8일 가와구치 교수가 이태원 사고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군중 밀집 사고 전문가다. 지난 2001년 일본 아카시(明石)시 불꽃놀이 사건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당시 35살로, 물리학을 전공하던 그에게 원인 규명을 위해 경찰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양자 연구를 하던 그는 아카시시 사고를 계기로 연구분야를 바꿨다. 일본은 유아가 대부분인 사망자 11명을 포함해 25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아카시시 사건 조사를 토대로 법을 개정, 혼잡 경비 제도를 갖췄다.

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고 보나.
“준비 부족이다. 초(超) 밀집상태를 만들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민으로부터 위험 신고가 접수됐지만 바로 출동하지 않았던 것은 경찰의 판단 미스다. 하지만 경찰이 신고를 받고 그 장소에 갔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이 있다.”
왜 그런가.
“경찰이 당시 이태원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미 밀집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갔더라도 인파 분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에 전혀 효과가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한국에서는 누구의 책임인가를 놓고 정치 논쟁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주최자가 없더라도 일본이었다면 자치단체와 경찰에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이번 같은 경우면 서울시, 그리고 지역 경찰이 될 거다. 사전에 준비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문화가 달라서겠지만 (책임자가) 윤석열 대통령이라든가, 장관이란 이야기가 한국에서는 들리는데, 일본이었다면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용산경찰서에서 핼러윈 축제의 위험성을 알고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고를 몇번이고 되짚어봤지만 사전 준비 문제라고 본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당일 경비를 제대로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정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 만들기의 문제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아카시시 불꽃놀이 사고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밀폐된 공간이다. 이태원도 양측에 건물이 늘어서 있어 좌우로 피할 공간이 전혀 없었다. 두 번째는 일방통행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고 상황을 외부에선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거다. 아카시시 사고 때는 현장에 경비인력이 있었지만, 안쪽이 밀집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 사람들을 통과시켰다. 이번 이태원에선 경비인력이 보이질 않았던 데다, 사람들이 각자 상황을 판단해 안쪽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전형적인 사고 형태와 닮았다. 그렇기에 경비인력을 사전에 세우고 상황을 판단해 보행자를 통솔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경찰이 몇 명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이야긴가.
“몇 명이 있든지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 전혀 소용이 없다. 다만, 사고가 일어난 길은 직선 형태로 폭이 3.2m에 길이 40m 정도 되는 곳이다. 사전에 주위를 20m 간격으로 인력을 1명씩 배치하고, 혼잡 상황을 체크해 양측 길 입구에 있는 인력에 연락해 일시적으로라도 보행자를 들이지 않도록 컨트롤하는 형태였다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본다.”
이번 핼러윈 때 인파가 몰린 시부야에서는 DJ경찰도 나와서 통제를 했는데 일본은 통상 이렇게 하나.
“시부야의 핼러윈은 주최자가 없다. 자치단체와 상인이 경찰과 상의해 계획을 세웠다고 알고 있다. DJ경찰은 아카시시 사고 이후 생겨난 것으로 차량 위에서 경찰이 유도를 하는 건데, 사람들이 몰리는 행사에 반드시 나온다. 높은 위치에서 인파 흐름을 보면서 유도하고,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마이크로 지시를 하는 것이 군중에게 효과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최근 배우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가 참석한 기후(岐阜)시 축제에 46만 명이 몰렸는데, 여기에도 DJ경찰이 나왔다. 일본은 인파가 몰릴 때 항상 기본이 일방통행이다.”
일방통행이 중요하다는 이야긴가.
“아카시시 사고 당시 일방통행이 아니었던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 바 있다. 사고가 난 이태원의 골목은 3.2m 폭인데, 어른 어깨가 약 50㎝라고 한다면, 6명 정도만 지날 수 있는 셈이다. 일방통행이 아니었으니 한쪽으로 3명 정도만 지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 길을 일방통행으로 해야 했다고 본다.”
요즘 같이 기술이 발전한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는데.
“일본의 경우에도 1950년대부터 군중밀집으로 인한 사고는 빈번했다. 1956년 니가타(新潟)현에서 12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러면서 사전에 계획을 세우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2001년 아카시시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면서 지금까지 일본의 사고 대비는 불충분했다는 뼈저린 반성이 있었고, 철저히 재정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카시시가 속한 효고(兵庫)현 경찰은 사고 이듬해 ‘혼잡경비 안내서’를 만들어 지금도 누구든 볼 수 있게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안내서는 밀집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효고현 경찰은 각 대학과의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총 120쪽짜리 지침을 만들었다. 군중 유도 시 ‘쉬운 말로, 문장은 짧게, 결론을 앞에 두라’ 같은 내용부터 마이크 사용, 돌발상황 때 어조까지 세세히 기록돼 있다) 이런 영향으로 행사 몇달 전부터 인파의 방향, 규모, 시간대 등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예컨대 길과 길이 합류하는 곳은 위험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진입 금지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한쪽으로만 통행하게 할 것인지 포인트별로 철저하게 분석해 대책을 세우는 형태로 하고 있다.”

다른 이야긴데, 밀집 상황이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인파가 몰릴 때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쓰러질 수 있는데 이때가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떨어뜨린 물건을 주우려고 구부리거나 해선 안 된다. 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명이라도 넘어지면 연쇄적으로 옆 사람이 잇따라 넘어지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같이 쓰러지면서 압사하는 경우가 많다. 체중의 2배에 달하는 힘을 가하면 1시간을 넘어도 버틸 수 있지만, 3배 힘을 가한 경우 1시간 정도, 5배의 힘이 더해진 경우에는 10분 정도에 질식사한다는 동물 실험 연구가 있다. 실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65㎏의 사람에게 5배 정도인 300㎏의 힘이 가해지는 경우 10분 정도에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이태원의 경우 1㎡에 16명 정도, 한명 당 300㎏ 가까운 힘이 더해졌는데, 이 상태로 10~20분 이어지면 질식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사고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좌우로 이리저리 밀리는데 순간적으로 더 큰 압력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초밀집 상태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스스로 탈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본도 아카시시 사고를 계기로 경비체계에 대한 인식이 극적으로 높아졌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지만 이번 사고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혼잡경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군중 사고의 무서움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생각부터, 의식부터 철저히 바꿔야 한다. 10대, 20대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지 않았나. 20대 자녀를 둔 아버지 입장으로서도 이번 사고는 정말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