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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수돗물은 억울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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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중열 물복지연구소장·전 한국수자원공사 처장

이중열 물복지연구소장·전 한국수자원공사 처장

가을 녹조가 극성이다. 지난달 초 낙동강 지류 내성천에 건설된 영주댐 상류에 가을 녹조가 심해지자 환경단체들이 물 방류에 이어 댐 철거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일반적으로 여름에 발생한 녹조는 하류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상류는 가을까지 이어진다.

녹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정밀한 모니터링과 과학적 접근 없이 무조건 큰 목소리만 고집할 것은 아니다. 댐이든 보든 만든 이유가 있고 그 기능이 있다. 이를 외면하고 댐 철거까지 거론한다면 “가뭄이나 홍수·농사 걱정 모두 접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댐을 부수자는 외침보다 생활 속 작은 실천으로 녹조를 줄이자는 외침이 환경단체엔 더 어울리고 절실하다. 일상생활이나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 역시 녹조 발생의 한 원인이다. 강과 하천에 유입되는 농어촌의 생활하수, 플라스틱, 일회용컵이 물속 생태계를 교란하고 녹조를 부른다.

한국 수돗물 맛·수질 세계 정상급
믿고 마시는 음용률은 5% 그쳐
녹조에 대한 오해와 불신 풀어야

수돗물

수돗물

물론 진초록으로 물든 녹조 가득한 강이며 호수는 공포스럽다. 그래서 언론은 ‘녹조라테’니 ‘조류독소’니 하는 자극적 표현을 동원한다. 그런데 녹조는 ‘공포의 대마왕’이 아니다. 조류(藻類)는 자연스럽게 수중에서 자라는 식물성 플랑크톤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증가와 감소를 반복한다.

산소와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광합성 작용을 하고, 수중 물벼룩 같은 동식물의 먹이가 되는 먹이사슬의 기초적 존재다. 적정 수준의 조류는 건강한 수생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물론 과다하게 발생하면 생태계 교란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생태계의 순환에 있지 않고 “과연 저 물을 먹어도 되냐”는 데 있다. 이에 대한 답은 “걱정 안 해도 좋다”는 것이다.

녹조가 발생해도 먹는 물은 안전하다. 녹조 현상을 일으키는 남조류는 대량 발생하면 조류독소와 냄새 물질이 함께 생성될 수 있다. 그러나 조류독소가 항상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는 조류 세포 안에 있다가 서식 환경이 악화할 경우만 배출된다.

조류에선 수돗물에 쾌쾌한 곰팡내와 흙냄새를 유발하는 ‘냄새 물질’이 배출된다. 지오스민(Geosmin)과 2-MIB 등이다. 하지만 보기 안 좋을 뿐 해는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녹조를 ‘심미적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수년간 연구로 인체에 유해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물질은 정수 과정에서 안전하게 걸러낸다. 환경부는 이들을 불쾌감 유발 물질로 지정해 먹는 물에서 20ng/L(1조분의 2g) 이하로 처리하도록 기준을 설정했다. 또한 수돗물의 안전성을 해칠 수 았는 조류독소 중 마이크로시스틴(Micircystins)은 WHO 가이드라인 마이크로시스틴-LR를 1.0㎍/L 이하(10억분의 1g)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취수 단계에서부터 조류 유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취수원 지역의 경우 조류 발생 예보·경보제를 통해 조류 발생을 최소화한다. 차단막을 세워 조류를 막고, 심층의 물을 선택해 취수한다. 우리 눈앞의 녹조는 먹는 물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따져보면 녹조든 4대강 보든 모든 문제의 출발은 먹는 물에 대한 불신이다. 국민이 수돗물을 못 믿는다는 것이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몇몇 사건들이 불신을 키웠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한국 수돗물은 세계적으로도 명품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122개 국가 중 한국 수돗물은 맛 7위, 수질 8위다.

세계적인 공식 평가가 이런데도 국민의 수돗물 직접 음용률은 5%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직접 음용률은 평균 51%다. 서울시 수돗물 ‘아리수’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중국 쓰촨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공급돼 호평받았다. 밖에선 대접받는 몸이 정작 안에선 외면당한다. 그래서 수돗물은 억울하다.

정부와 물 관련 기관들이 수돗물에 대한 신뢰 회복 방안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마시는 물에 믿음을 갖게 되면 녹조는 ‘공포의 대마왕’이 아닌 생태계 문제, 진짜 환경 문제로 우리 앞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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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열 물복지연구소장·전 한국수자원공사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