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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이름 없는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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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 4일 오전 10시 반, 일본 도쿄(東京) 네리마(練馬)구의 한 주택가. 마을 공원엔 빨갛고 노란 단풍이 곱게 들었다. 어린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울린다. 공원 옆 한 낡은 임대주택. 휠체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문 앞 우산꽂이에 있는 비닐우산은 먼지를 뒤집어썼다. 대문엔 때 묻은 명함 한 장이 명패 대신 붙어있다. SUNG KYU OH. 일본 내 유일한 광복군 생존자, 오성규(99) 애국지사의 이름이다.

문손잡이를 돌려보니, 스르르 문이 열린다. 지나가던 이웃이 한마디 거든다. “도우미(헬퍼)가 자주 오니까, 문을 열어 놓고 계시던 걸요.” 오 지사는 야구경기를 틀어 놓은 채 깜빡 잠이 들어있다. 거동이 불편하니 외출은 쉽지 않다. 찾아오는 이도 없다. 하루 네 번, 구청에서 지원하는 도우미가 유일하다.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일본인 처조카가 후견인 노릇을 맡고 있다. 오전 11시쯤 방문한 도우미가 차려준 흰죽과 과일을 먹은 뒤, 종종걸음으로 소파에 앉은 그가 입을 뗐다. “내가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나 봐요. 많이 아파요.”

오성규 애국지사가 지난 1990년에 받은 건국훈장 애족장. 광복군 시절 가명인 주태석으로 되어 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오성규 애국지사가 지난 1990년에 받은 건국훈장 애족장. 광복군 시절 가명인 주태석으로 되어 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소파 옆 찬장엔 훈장이 놓여있다. ‘대통령 노태우’란 이름이 훈장 글씨보다 크다. 1990년에서야 받은 건국훈장 애족장에 박혀있는 이름은 주태석. 광복군 시절 가명인데, 30여년이 지난 지금껏 본명으로 된 훈장을 받지 못했다. 100세가 다 되도록 ‘이름 없는 영웅’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기운을 차린 그가 옛이야기에 흥을 냈다. 고향은 평안북도 선천. 중학교 졸업을 앞둔 16살, 중국 충칭(重慶)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했다. 광복군에 들어가선 김구 선생을 만나 인사도 했다. 독립운동을 위해 낙하산 훈련을 가던 중 광복 소식을 들었다. 왜 자원했느냐고 하자,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우리나라가 독립해야 하잖아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오 지사가 대문까지 따라 나온다. “한국어로 이렇게 오랜만에 말을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매년 11월 11일이면 일본에선 재일학도의용군 주최로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長津湖) 전투 전사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에 있던 청년과 학생 642명이 자원했는데, 이중 일본에 생존해있는 분은 단 2명이라고 한다.

그뿐만인가. 아픈 역사를 버텨내고 일본에 거주하는 우리 국적의 100세 이상의 동포는 26명에 불과하다. 시간은 간다. 때마다 권력자 입에서 나오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이들 앞에 공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