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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직무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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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위문희 사회2팀 기자

서울경찰청은 총경급 과장이 돌아가면서 주말과 공휴일 당일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상황관리관 당직을 선다. ‘서울특별시경찰청과 경찰서의 당직근무규칙’에 따르면 서울청 상황관리관은 ‘112지령 등 상황관리와 당직업무 등 모든 상황을 총괄’한다. 24시간 근무 특성상 전반(오전 9시~오후 1시, 오후 6시~다음날 오전 1시) 근무 후 자가대기가 가능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서울청 당직 상황관리관은 류미진 총경이었다. 류 총경의 보직은 서울청 인사교육과장이다. 사고 발생 시각은 오후 10시 15분. 류 총경은 5층 상황실이 아닌 10층 자신의 사무실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1시간 24분이 지난 뒤 내려와 당직팀장으로부터 사고를 보고받았다.

류 총경은 지난 2일 대기발령됐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됐다. 서울청 과장들에 따르면 주말 당직은 본인 사무실에서 보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한다. 오히려 상황실에 내려와 “오늘 어떤 신고가 들어왔어요?”라고 물어보면 직원들은 의아하게 여긴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12 신고는 긴급사고 발생 시 초동 대응부터 현장 지원까지 겸하면서 상부에 보고 업무까지 해야 하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같은 총경급이더라도 경찰은 기획·정보·수사·생안·경비·교통·외사 등 각자의 주력 기능이 폭넓다.

형법 제122조에 명시된 공무원 직무유기 혐의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 형량을 규정하고 있다. 직무유기로 156명 사망의 책임을 묻기에는 그 형량이 결코 무겁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법원이 근무지 이탈이나 업무 태만으로는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는 거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부실 관제로 재판에 넘겨진 진도 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 직원 13명. 대법원은 2015년 11월 이들의 직무유기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하고, 교신일지를 조작한 행위만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류 총경은 29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자기 방에 머무르면서 의식적으로 상황관리관 업무를 방임했는지 규명하는 게 관건이다. 직무유기를 형사적 책임으로만 물어야 하나. 당직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 것도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