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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m 메타세쿼이아길, 600살 은행나무…샛노란 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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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나주 산포면에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가 있다. 광주에 있다가 1975년 지금 자리로 옮겼는데 80년대에 심은 메타세쿼이아가 연구소의 명물로 꼽힌다. 약 450m에 이르는 길이 단풍으로 물드는 늦가을 풍광이 백미다.

나주 산포면에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가 있다. 광주에 있다가 1975년 지금 자리로 옮겼는데 80년대에 심은 메타세쿼이아가 연구소의 명물로 꼽힌다. 약 450m에 이르는 길이 단풍으로 물드는 늦가을 풍광이 백미다.

입동(11월 7일)이 지났다. 계절은 거짓말을 안 한다. 이내 가을이 떠날 테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지만, 그런다고 남아 있을 가을이 아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 우리는 남도로 내려가야 한다. 단풍을 더 오래 볼 수 있고 아직 패딩 재킷을 안 입어도 되니까. 지난 3~4일 전남 나주를 다녀왔다. 가는 곳마다 단풍 천국이었다. 수령이 500~600년이라는 은행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가 거대한 세계였고, 갈빛으로 물든 메타세쿼이아 길은 농도 짙은 유화 같았다.

목사가 살던 작은 서울

금성산 월정봉이 굽어보는 나주향교는 전국 3대 향교 중 하나로 꼽힌다. 향교 안팎에 은행나무가 많아서 가을철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향교 설립 즈음 심은 수령 600년 은행나무도 있다.

금성산 월정봉이 굽어보는 나주향교는 전국 3대 향교 중 하나로 꼽힌다. 향교 안팎에 은행나무가 많아서 가을철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향교 설립 즈음 심은 수령 600년 은행나무도 있다.

나주는 예부터 소경(小京)이라 불렸다. 고려 시대부터 지금의 광역시에 해당하는 12목(牧) 중 하나였고, 지형과 지세가 서울과 닮아서였다. 조선 태종 7년(1407년) 설립한 나주향교는 역사와 규모가 서울 성균관 못지않다. 나주시 이교숙 문화관광해설사는 “보물인 ‘대성전’은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서 가져온 흙으로 지었다”며 “성균관에 불이 났을 때 나주향교를 모델로 재건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도 나주향교에서 찍었다.

나주읍 금성관 뒤뜰에 있는 600살 은행나무 두 그루.

나주읍 금성관 뒤뜰에 있는 600살 은행나무 두 그루.

나주 원도심에는 노거수가 많다. 대성전 마당에 600년 세월을 향교와 함께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산다. 조선 시대 객사(客舍)였던 ‘금성관’ 뒤뜰에도 수령 600년에 달하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고아한 모습으로 서 있다. 나주목을 다스리던 목사의 살림집 ‘금학헌’에는 사연 많은 500살 팽나무가 산다. 1980년대 벼락을 맞아 두 쪽으로 쪼개졌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나주 사람은 금학헌에 좋은 기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주 배로 만든 한과와 양갱.

나주 배로 만든 한과와 양갱.

향교 담장 뒤편에는 은행나무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 ‘3917마중’이 있다. 5년 전, 폐가 7채가 카페와 숙소로 탈바꿈했다. 한옥과 서양식 건축, 일본식 다다미가 공존하는 건물이 흥미롭고, 나주 특산물 배를 활용한 양갱·쿠키 같은 디저트도 맛이 색다르다.

차 안 다니는 메타세쿼이아길

산림자원연구소 향나무길. 길을 따라 식산으로 가면 다양한 산책로가 나온다.

산림자원연구소 향나무길. 길을 따라 식산으로 가면 다양한 산책로가 나온다.

원도심 밖에도 만추를 만끽할 장소가 많다. 먼저 가볼 곳은 산포면에 자리한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이 유명하다. 전남 담양이나 곡성에도 멋진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다. 하나 산림자원연구소 메타세쿼이아 길은 주변에 차가 다니지 않아 안전하고, 450m 길 좌우로 나무가 늘어선 풍광도 압도적이다.

연구소는 수목원도 공원도 아니다. 그러나 여느 수목원 못지않게 넓고 다채로운 전시원도 갖췄다. 67만㎡ 면적에 804종 3만6000본의 식물이 산다. 게다가 무료다. 연구소는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가 헐벗은 한반도에 나무를 심기 위해 설립한 임업 묘포장이 시작이었다. 1975년 광주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고, 1993년 산림환경연구소, 2008년 산림자원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메타세쿼이아 길에만 관람객이 몰리는데 연구소 안에는 매력적인 산책로가 많다. 향나무 길과 연구소 뒤편 식산 오름길도 좋다. 한겨울에도 싱그러운 초록 세상이 펼쳐진다. 오득실 산림자원연구소장은 “산길에서 삼나무, 호랑가시나무 같은 난대수종을 많이 볼 수 있다”며 11월까지 숲 해설, 치유의 숲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고 말했다. 연구소 개방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편백·비자나무 우거진 산사

덕룡산 불회사도 단풍이 절정이다. 붉은 애기단풍이 많다.

덕룡산 불회사도 단풍이 절정이다. 붉은 애기단풍이 많다.

연구소 인근 남평읍에는 가을마다 단풍놀이객이 몰리는 은행나무수목원이 있다. 한 해 30만 명이 찾는 나주의 신흥 명소다. 60년 전, 매실 농사를 지으면서 병충해 방지 차원으로 심은 은행나무가 지금은 도리어 명물이 됐다. 약 30만㎡ 수목원 부지에 은행나무를 비롯해 은목서, 홍가시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살고 있다. 수목원 황인철 사장도 은행나무가 몇 그루인지 세 본 적이 없단다. 지난 3일 방문했을 때 단풍이 절정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졌다. 그래도 바닥에 깔린 낙엽이 노란 카펫 같다. 입장권(5000원)을 사면 카페에서 쓸 수 있는 3000원짜리 쿠폰을 준다.

사찰 입구에 있는 석장승. 표정이 친근하다.

사찰 입구에 있는 석장승. 표정이 친근하다.

수목원보다 더 남쪽에 자리한 덕룡산 불회사도 가보자. 366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규모는 작지만 다포 양식으로 지은 대웅전, 종이를 여러 겹 덧대고 옻칠한 불상이 보물로 지정됐다. 진입로는 편백이 울울한 숲을 이룬다. 석장승이 마주 선 입구를 지나면 울긋불긋 단풍과 사찰이 어우러진 풍광이 펼쳐진다. 잎이 자잘하고 새빨간 ‘애기단풍’이 특히 많다. 절 뒤편 숲에 비자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 밑에 야생 차나무가 자란다. 비자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 찻잎을 덖어 만든 ‘비로다(榧露茶)’가 불회사의 명물이다. 경내 찻집에서 시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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