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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들, 이태원 참사 몸 낮춰 수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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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14년 열린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발·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한 모습이다. [중앙포토]

2014년 열린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발·면도를 하지 않아 덥수룩한 모습이다. [중앙포토]

이태원 참사를 놓고 정치권의 책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늑장·부실 대응의 책임자로 경찰과 관할 지자체를 지목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보다 윗선을 조준하고 있다. 책임론의 불씨가 번져가는 모습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정치권을 떠올리게 한다. 세월호 정국에도 비판의 화살을 피한 이가 있었다. 참사 이후 136일 간 유족과 함께 팽목항을 지켰던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사고 당일 팽목항으로 향한 이주영 장관은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넉 달 넘는 기간 동안 면도도, 이발도 하지 않은 채 간이침대에서 먹고 잤던 그는 ‘울보 장관’으로 불렸다.

유족의 마음을 열었던 진정성 있는 태도는 두고두고 회자했다. 특히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뒤 “당시 세월호 유가족과 동고동락했다”(윤상현 의원)는 회상도 나왔다.

7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 전 장관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직도 괴롭다”면서도 부쩍 늘어난 관심에 부담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는 “장관들은 끊임없이 낮은 자세로 사고 수습에 임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팽목항에 내려갈 당시를 기억하나.
“사고 당일 오전 8시부터 경제장관회의가 서울정부청사에서 있었다. 그게 9시 좀 넘어 끝났을 때 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상당히 위중하다고 해서 당시 해경청장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뒤에 예정된 오찬, 인터뷰 모두 취소하고 인천 해경본부 상황실로 갔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결국 팽목항으로 갔다.”
현장 상황은.
“배의 머리만 물 위로 나와 있었다. 배가 더 가라앉지 않게 이동시킬 방법이 없을까 해서 조선 3사의 해상 크레인들을 현장으로 급파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들이 이 방법도 힘들단 얘길 해 해당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에 유족들과 많이 울었다.
“팽목항과 안치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아이들이 구조되는 걸 지켜봤다. 이렇게 자세히 말하는 건 지금도 힘들다. 트라우마가 있다. 팽목항을 떠나는 순간까지 미수습자 9명의 사진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다.”
이발도, 면도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겨를이 없었고, 나중엔 유족들 보기에 송구스러워서 자르지 않았다.”
이태원과 세월호 참사를 비교하는 분도 많다.
“상황은 다르지만, 경찰의 112 신고 대처와 세월호의 구조 요청 이후 해경의 조치가 비슷해 보인다. 수사에 따라 적절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주무 장관인 이상민 장관의 실언이나 태도에 대한 질책도 많은데.
“이 시점에서 뭐라고 논평하는 건 부적절하다. 국민이 판단하실 거다. 다만 최대한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을 어떻게 보나.
“수습과 책임, 둘 중 어떤 것이 먼저인지 정해진 건 없다. 다만 법적인 책임과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별개다. 시의적절하게 조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고 있다.”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사의를 여러 번 표했는데.
“큰 사고를 발생시킨 주무 부처의 총 책임자니까 당연히 책임지고 사퇴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다만 희생자들이 수몰된 상황이기 때문에 시신을 찾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좀 사퇴가 미뤄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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