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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자 명단 공개 집착하는 野…‘청담동 의혹’ 보도 매체도 동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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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이름ㆍ위패ㆍ영정 없이 분향소를 차린 것에 대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다시 촛불 들고 해야겠느냐”며 한 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가 끝난 직후 검찰 수사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가 끝난 직후 검찰 수사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성룡 기자

같은 날 강성 친야(親野) 성향의 유튜브 매체인 ‘시민탐사 더탐사’도 “이태원 피해 사망자들의 명단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으로 모두 넘겨드렸다. 추모 미사에서 모두 공개할 것으로 잠정 합의했다”는 공지를 냈다. 행정안전부 등 정부 당국만 아는 명단을 본인들이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홍보했다.

친야 유튜브 매체인 '시민탐사 더탐사'가 지난 9일 유튜브에 올린 공지. 그 아래엔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참여 독려 공지도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친야 유튜브 매체인 '시민탐사 더탐사'가 지난 9일 유튜브에 올린 공지. 그 아래엔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참여 독려 공지도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野 “과거에도 애도 목적 공개”…與 “정치적 패륜”

야권이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건 과거 참사 땐 사망자 명단이 공개됐는데, 이번엔 정부가 의도적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있다는 의심에 근거한다. 성수대교 붕괴(1994년)ㆍ세월호 침몰(2014년)ㆍ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등에서 명단이 모두 공개됐는데, 현 정부는 2차 피해 예방을 이유로 명단 비공개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성수대교 참사 등 과거 모든 사건에서 희생자 명단은 공개됐다”며 “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을 공유하며 슬픔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박찬대 최고위원도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굉장히 소극적”이라며 “참사를 가리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엔 “사건을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패륜”(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의심이 팽배해 있다. 세월호 참사 때 명단 공개 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은 물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각종 단체가 유족에 접근해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여론을 만들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게다가 이 대표가 ‘세월호 촛불’까지 언급하며 명단 공개를 압박한 지난 9일은 검찰이 민주당 중앙당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사정 칼날이 이 대표 턱밑까지 다가온 날이었다. 여권이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또다른 이유다.

이번 논란의 시발점은 지난 7일 이연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문진석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에 보냈다가 언론에 포착된 텔레그램이었다. 문자엔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체 희생자 명단ㆍ사진ㆍ프로필을 확보해야 한다”고 적혔다.

민주당은 8일까지만 해도 “(명단 공개 논의는) 전혀 이뤄진 바 없다”(오영환 원내대변인)고 선을 그었는데, 태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시민언론 더탐사가 지난달 24일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보도하는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시민언론 더탐사가 지난달 24일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보도하는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여권에선 더탐사의 정파성도 문제 삼고 있다. 더탐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김앤장 변호사 30여명과 술을 마셨다는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최초 보도한 곳이다. 더탐사가 정말 명단을 확보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더탐사가 명단을 넘겼다는 사제단 측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거듭 확인했지만 받은 게 없다. 더탐사의 일방 주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더탐사 측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취재 과정에서 명단을 입수한 것도 맞고 사제단 소속의 신망 있는 신부에게 넘긴 것도 맞다”고 주장하며 “사제단 내에서 아직 공식 논의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의당도 반대…유족 “제발 이용 말아 달라”

정의당은 이날 “정치권이 명단 공개에 앞장서는 것은 슬픔에 빠진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이은주 원내대표)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도 전날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명단 공개 여부와 관련, “기본적인 출발은 사생활”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도 “우리가 인권 중시 정당이 맞느냐”는 말도 나온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사망자의 위패가 없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애도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서울 용산구 녹사평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사망자의 위패가 없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애도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한 참사 유족은 중앙일보 통화에서 “진짜로 강행하면 국회를 찾아가서라도 뜯어말릴 것”이라며 “제발 정치권은 우리를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다른 참사와 달리 이번 피해자들이 유독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건 다 알지 않느냐”며 “뭐가 됐든 참사 분위기를 계속 끌고 가겠다며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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