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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물결'은 없었다…美선거, 샤이 바이든-反트럼프 결집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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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붉은(공화당의 상징색) 물결’이 강하게 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잔물결에 그쳤다. 주요 여론조사와 언론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낙태권 이슈를 중요하게 여긴 민주당의 숨은 지지층 ‘샤이 바이든’ 효과와 민주주의 위기를 느낀 ‘반(反) 트럼프’가 결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중간선거 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면서 윙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중간선거 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면서 윙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 ‘붉은 물결’ 없었다…여론조사 뒤집혀

AP 통신에 따르면 9일 자정(현지시간) 현재 상원은 초박빙으로 혼전 중이고, 주지사 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절반씩 나눠 가졌다. 하원은 공화당이 앞서고 있지만 압도적이진 않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주요 매체는 "예상했던 붉은 물결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론조사가 허를 찔린 대표적 승부처가 펜실베이니아다. 상원 다수당 향방을 결정지을 경합주로 꼽혔던 이곳에선 민주당 존 페터만(50.6%) 후보가 공화당 메메트 오즈(47%) 후보를 꺾었다. 막판 여론조사에서 오즈가 1%포인트 이하로 근소 우세를 보였지만 실제는 페터만이 3%포인트 가까이 앞섰다.

민주당의 존 페터만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당선자가 9일 피츠버그에서 열린 승리 파티에서 연설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의 존 페터만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당선자가 9일 피츠버그에서 열린 승리 파티에서 연설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다른 경합주 조지아주 상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라파엘 워녹 후보(49.4%)가 공화당 허셸 워커 후보(48.5%)를 눌렀다. 워커 후보가 1%포인트 앞설 것으로 본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다. 두 후보 모두 과반 득표를 못해 주법에 따라 다음 달 6일 결선투표를 한다.

주지사 선거도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우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선거를 한 36곳 중 경합주 4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32곳에서 절반씩 가져갔다. 경합주인 위스콘신주는 예상을 엎고 현직인 민주당 토니 에버스(51.2%) 주지사가 공화당의 팀 마이클스(47.8%) 후보를 이겼다.

공화당 우세로 예측됐던 애리조나주에서도 현재 개표율 70%에서 민주당 케이티 홉스 후보와 공화당 캐리 레이크 후보가 접전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 수성이 어려울 수도 있다던 뉴욕주에선 현직인 민주당 캐시 호컬(52.8%) 주지사가 공화당의 리 젤딘(47.2%) 후보를 제쳤다.

하원 선거에선 현재 435석 중 396석 결과가 나왔다. 공화당이 207석, 민주당이 189석을 확보했다. 공화당이 과반 의석(218석)을 넘길 것으로 보이지만, 10석 안팎 격차로 힘겹게 다수당이 될 것이라고 NBC가 전했다.

예일대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소넨필드 리더십 연구 담당 수석 부학장은 "민주당이 상·하원 통제권을 전부 잃을 수 있지만, 여론조사와 언론이 예측한 붉은 물결은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당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성공적인 중간고사를 치렀다"고 평가했다.

낙태권·민주주의에 움직인 무소속 유권자

AP 보트캐스트(VoteCast)가 이번 선거에 참여한 전국 유권자 9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경제적 불안으로 공화당 후보를 찍을 거라고 예상됐던 무소속 유권자들이 민주당 후보를 3%포인트 더 지지했다. 이들은 상원 선거 경쟁이 치열했던 펜실베이니아·조지아·애리조나주 등에선 19~30%포인트 이상 차이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용히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샤이 바이든’이 많았다는 뜻이다.

낙태권 지지자들이 지난 8일 미 버몬트주 브레틀보로의 한 투표소 밖에서 유권자들에게 낙태권 정책 투표에서 낙태권을 찬성하는 표를 던지라고 호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낙태권 지지자들이 지난 8일 미 버몬트주 브레틀보로의 한 투표소 밖에서 유권자들에게 낙태권 정책 투표에서 낙태권을 찬성하는 표를 던지라고 호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 중심에 낙태권 문제가 있다. 지난 8일 초기 출구 조사에서 이번 선거에 영향을 끼친 이슈 1·2위에 물가상승(31%)과 낙태권(27%)이 비슷하게 꼽혔다. 특히 펜실베이니아의 경우 공화당 후보가 낙태권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면서 일반 공화당원에게조차 반감을 샀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번 선거에선 낙태권 관련 정책 투표도 5개 주에서 열렸는데, 진보 성향의 3개 주(버몬트·미시간·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보수 성향 지역인 켄터키·몬태나주에서도 낙태권을 옹호하는 유권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반트럼프’ 효과도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기한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의혹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급기야 지난달 28일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남편이 극우 성향 음모론자에게 피습당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무당파들이 결집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로 인해 공화당 내 대표적인 선거 부정론자인 팀 마이클스(위스콘신), 튜터 딕슨(미시간), 댄 콕스(메릴랜드), 대런 베일리(일리노이) 등이 주지사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운 실력이 부족한 후보들이 공화당을 나락으로 끌어내렸다고 진단했다. 공화당원인 정치 전략가 스콧 리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류 후보를 많이 뽑은 게 결정적 패인”이라면서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3주 동안은 자신을 내세우는 선거운동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AP 보트캐스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23%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선거에 임했고, 35%가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투표했다고 답했다.

공화당 우세를 예측한 일부 여론조사에 휩쓸린 언론은 반성했다. WP는 칼럼에서 “이번 선거의 최대 패자는 미디어”라면서 “선거 직전 일부 여론조사 결과를 과도하게 받아들여 잘못된 가정에 상상을 더했다”고 인정했다.

바이든 ‘선방’·트럼프 ‘패자’·드샌티스 ‘승자’

공화당 압승을 예상한 여론조사 덕분에 바이든 대통령은 제자리를 지키고도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긴 유일한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차기(2024년) 대선 출마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시 출마하는 게 나의 의도”라고 했다. 하지만 출구 조사에서 미국 유권자의 67%가 바이든 대통령의 출마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바이든 대통령 퇴진을 희망하는 분위기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중간선거 관련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미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중간선거 관련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오는 15일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결과 책임을 각 후보에게 돌리고 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지 못한) 문제는 후보들”이라며 “그들은 나쁜 후보들”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중간선거에서 이기면 내 공이고, 공화당이 지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예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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